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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0일 화요일

백가쟁명 - 이중톈

백가쟁명 - 이중톈

2009년 출간 원명 선진제자백가쟁명

1. 총평

 저자는 1947년 후난성 창사 출신, 1981년 우한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샤먼대 인문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2005년 4월 CCTV의 백가강단 프로그램을 통해 초한지 강의를 강의하면서 중국 대중의 폭발적 인기를 누림
 이 책은 공장 맹자의 유가류, 노자 장자의 도가류, 묵자의 묵가, 한비자 이사의 법가류의 핵심 사상을 정리하면서, 그 사상들이 중국사에 차지하는 위치, 지금까지 중국인들에게 미친 영향, 각 사상들의 장단점에 대해서 해박하게 설명하고 있다. 캐나다의 철학자 월 듀런트가 세계 10대 사상가를 나열하면서, 공자를 제 1위에 놓았는데, 공자 외에 10대 사상가까지 동양인은 없다. 공자만이 제자백가 중에서 1위라는 뜻이 아니라, 공자와 사상을 겨루었던 나머지 인물들을 포괄하여 1위라는 뜻이다.  공자는 일반 민중으로서 천하대사를 처음으로 거론했던 인물이고, 공자가 그런 후에야,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천하대사를 자기 이론으로 거론하게 되었기 때문에, 제자백가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공자의 공이 큰 셈이다.
 유가와 묵가를 비교한 부분에서 유가와 묵가 자체의 사상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콘트라스트 효과를 느끼고, 노자와 장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도가 자체는 유가와 묵가와는 차원이 다른 논의라고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가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자체의 깊은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법가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법치주의와 다른 점은 있어도 현재의 국가체계에서도 국가를 경영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지 엄청난 참고가 될 지혜를 안겨주는 책이다.
 이후 내용 요약을 하면서 되새겨지는 후기도 참조바란다.


2. 공자

가. 공자는 누구인가

 기원전 551년 ~ 479년,
 논어에 언급되는 제자들 - 자공 28번, 자로 42번, 안회 21번, 자하 21번 각 언급
 속담에 영웅은 출처를 묻지 않는다.
 문왕과 무왕이 남긴 문화유산은 사라지지 않고 민간에 흩어졌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민간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었는데, 다만 현자는 그 가운데 큰 것을 배웠고, 불현자는 작은 것을 익혔을 따름이다. 문무의 도가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데, 어디선들 배우지 않았겠는가?
 학문을 하는 네 가지 병폐 - 의필고아,   의 -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 필 -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것, 고 - 아집에 얽매이는 것, 아 -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
 학문의 대성 - 오성과 관통 - 지식이 많거나 기억력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대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이관지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점, 방법이 없으면서 학문 운운하는 것은 그저 땅에 떨어진 닭털과 같은 것일 따름이다.
 공자의 학문은 쓰임을 중시했다. 관계와 사회에 사용되었다. 정치는 관가에 필요한 것이고, 윤리는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나. 학문을 하면서 여유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

 내가 어찌 박처럼 매달려 있기만 하고 먹히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인이나 군자는 인생의 가치를 지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관리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을 하는 것이다.  벼슬을 하면서 여유가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

다. 군자는 진정 곤궁하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언어가 순ㅌ오하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순통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합하지 못하며, 형벌이 적합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 정명
 공자는 노, 위, 진나라에서 관직을 얻었다. 노나라에서는 대사구의 신분으로 재상의 일을 대행한 적도 있다(4년). 위나라에서는 7년, 진나라에서는 3년간 벼슬을 했다.
 소인은 궁지에 몰리면 넘친다.
 

라. 최고의 교사

 정치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정치에 영향을 주었다.
 공자의 제자는 세부류이다. 35세 이전 노나라에 머물 당시 가르침을 받은 이들, 54세 전후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을 때 얻은 이들, 공자 나이 55세에서 68세 때까지 열국을 주유할 때 얻은 제자들.  사서에 의하면, 공자는 3천 제자에 72현인이란 말이 있다.
 공자가 아들 공리에게 한 말 -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예를 배우지 못하면 제대로 설 수 없다.
 공자가 가르친 것은 문 - 역대문헌, 행 - 사회적 실천, 충 - 도덕수양, 신 - 행위준칙
 귀신 - 사람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마. 누가 좋은 학생인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예에 의지해야 하는데, 그의 말은 전혀 겸손하지 않았다. 그래서 웃은 것이다.
 공자에게 인간됨의 가장 높은 경계는 ‘인’이고, 치학에서 가장 높은 경계는 ‘락’이다. 논어의 옹야에 보면,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옛날 배우는 이는 자신을 위해 배웠지만 지금 배우는 이는 남을 위해 배운다.
 군자는 자신에게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공자가 볼 때 배우고 익히는 것은 평생에 걸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고통스럽다면 결국 평생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뜻이 아닌가.
 논어의 첫구절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않은가.
 안회 - 자가 자연이므로, 안연이라고도 한다. 기원전 522 ~ 481년. 제자들 가운데 오직 안회만이 3개월이 되도록 마음으로 ‘인’을 어긴 적이 없다고 했다. 안회는 학문과 도덕이 뛰어났는데, 자주 끼니를 굶었다.
 여하튼 맨 손으로 법을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와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바. 상심과 농담

 공자는 만년에 고독하고 비애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공자는 나이 68세 때 계강자의 부름을 받고 노나라로 돌아왔다. 귀국 2년 후 외아들 공리가 50세로 세상을 떴다. 4년째 되는 해에 안회가 40세의 나이로 사망. 그 이듬해에는 언제나 충성스러웠던 자로가 장렬하게 희생. 6년 째 되는 해 공자가 73세로 사망.
 공자가 재여에게 한 말 -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 그러니 재여를 꾸짖어 무엇하랴?
 예전에 나는 사람을 때할 때 그 말을 들으면 그의 행동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을 대할 때 그 말을 들으면 그의 행동을 관찰한다. 재여로 인해 그렇게 바뀌었다.
 선비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 행하는데 늘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나아가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가히 ‘사’라고 부를 수 있다. 그 다음은 - 일가친척이 효성스럽다고 말하고, 이웃사람들이 윗사람을 공경한다고 말하면, 이는 근본은 서 있는 것이나 재목이 되기에 부족하면 이를 버금가는 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 말이 믿을 만하고 행동이 과감한 자인데, 이런 사람은 천박하고 고집스러운 소인이지만 그래도 그 다음 가는 사람이다. 현재 정치하는 사람 - 도량이 협소하고 식견이 천박한 이들이니 말해서 무엇하겠느냐.  
 
3. 유가와 묵가의 논쟁

가. 유와 협

 묵자는 최초로 공자와 유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인물이자 최초의 반대파이다.
 ‘묵자’에는 오직 이긴 싸움만 있고 패배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슬프다! 말만 하면 탕 임금과 문왕을 들먹이면서 행동은 어찌 개나 돼지와 비교하는가? 슬픈 일이로다.
 묵자와 공자는 시대가 다르다. 공자보다 80년 후에 태어났다. 공자는 춘추시대, 묵자는 전국시대.
 공자도 현실에 불만을 가졌지만 대부분 완곡한 비판과 적극적인 건의로 해소하면서 통치자가 변화하기를 기다렸다. 묵자는 비판성이나 전투성이 강렬하여 거의 숨김없이 자신의 태도를 표명하는 편
 공자는 귀족의 입장을 대변했다. 묵자는 평민적이다. 노동인민의 편에 섰다.
 묵자의 열가지 사상 - 겸애, 정치사상으로는 상현, 상동, 비공, 경제사상으로는 절용, 절장, 비약, 종교사상으로는 천지, 명귀, 비명
 묵자는 유가의 예에 반대하며, 악에도 반대하였다. 예는 존비를 중시하고 평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악은 문학, 음악, 무용, 미술 등을 포함한 종합예술로서 악무를 말하는데, 이런 악무를 연출하려면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서로 협조하여야 한다. 이런 것은 일반 노동대중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묵자는 나이가 들어 명성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공예나 토목기술 등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뛰어난 기술과 솜씨로 새로운 기물을 발명한 적도 많다.
 공자는 육예에 정통했지만, 묵자는 공예에 뛰어났다. 공자는 음악에 조예가 있었지만 묵자는 물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공자는 사상가인 동시에 예술가였지만 묵자는 사상가이자 기술자였다.
 공자와 묵자는 유와 협의 인도자이다. 공자가 유를 위해 내놓은 출로는 독서와 벼슬이었다. 묵자가 내놓은 출로는 평상시에는 자력으로 먹고 살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의협심을 발휘아여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다시피 공자의 길은 양관도처럼 그야말로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묵자의 길은 아예 갈 수가 없다. 결국 최종적으로 유가는 승리하였고 묵가는 실패하고 말았다. 공자는 미래의 대표가 되었고, 묵가는 과거의 대표가 되었다.
 유가는 예의를 통해 정치에 영향을 주고 예악문화와 제도를 유지하고 부흥할 것을 희구했다. 묵가는 무사와 협객의 직업 도덕에 대해 이성적인 해석과 규범을 마련했다.
 실제로 유가와 묵가는 당시 가장 이상적이고 큰 포부를 지녔으며 또한 가장 도덕적인 사람들의 집합이었다.

나. 공자의 처방

 혼탁한 세상을 구제하는 처방전은 인仁이다. 바른 것을 들어 잘못된 것을 교정하면 백성들이 복종하며, 잘못된 것을 들어 바른 것을 바꾸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을 수 있는 방법은 극기복례이다.克己復禮이다 능히 스스로 예를 실천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하루라도 능히 스스로 예를 실천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공자는 예와 악이 있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들에게 애심(愛心), 즉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어진 자에게 우물 안에 사람이 빠졌다고 말해준다면 그도 따라 우물에 들어가겠지요?라는 질문에, 공자는 어찌 그런 가설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 군자는 요구할 수 있으나 빠지게 할 수는 없고, 속일 수는 있으나 우롱할 수는 없다.
묵자는 자식이 되어 3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3년 상을 치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공자의 발언에 대해 가소롭다는 듯이, 어린아이가 부모에 의지하고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기 때문이다.
인을 행함이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남에게 달려 있지 않다. 따라서 예약이 붕괴되는 것은 예약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성, 인심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하여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어짐의 토대는 모든 이들의 인성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친친(親親)지애로서 그 사랑은 타고난 것으로 자연적이고 합리적이다. 아비가 자식을 숨겨주는 것도 그 심리적 동기나 감정적 체험 역시 진실하고, 이것이 바로 인성의 진실이자 최고의 진실이다. 후대에 이것은 시비는 묻지 않고, 친소관계만 묻는 병폐가 생기는 원인이다.

다. 묵자의 처방
으뜸이 되는 의원은 나라의 병을 고친다는 상의(上醫)의국(醫國)에서 의원이란 학식과 도덕이 높은 현자를 말한다. 묵자는 상의를 자처했다.
묵자는 나라와 나라가 서로 공격하는 증상, 가족과 가족이 빼앗는 상호약탈, 개인과 개인이 서로 죽고 죽이는 증상이 있는 병세가 현재이다.
병의 원인은 임금이 은혜롭지 않고, 신하가 불충하며, 아비가 자애롭지 않고, 자식이 효성스럽지 않아서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기의 것만 사랑하고 남의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애 혹은 상겸애가 바로 그 해결책이다. 이론적인 것은 맞지만 실천가능한가의 문제이다.
임금이 그것을 좋아하면 사람들도 능히 그렇게 할 것이다.
초나라 영왕이 가능 허리를 좋아하자 그의 신하들이 모두 살을 빼느라 하루에 한 끼만 먹어 얼굴이 누렇게 뜨고 홀쭉해져 담장을 잡고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또한 진나라 문공이 소박한 것을 좋아하자 신하들이 모두 거친 베옷을 입고 암양의 가죽 옷을 걸쳤으며, 가죽 혁대에 칼을 차고 거친 두건을 썼다. 초나라 구천이 용맹한 것을 좋아하자 그의 병사들은 뜨거운 불길에 뛰어들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겸애는 좋은 점이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도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다른 사람을 도와 주면 그 사람도 당신을 돕게 된다.
천하의 계란을 모두 던진다고 해도 나의 말은 반석과 같아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의 사랑은 인애(仁愛)이고, 묵자의 사랑은 겸애(兼愛)이다.
라. 맹자와 묵자
맹자는 기원전 372~289년, 묵자는 맹자보다 90여세 연상이다. 맹자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공자가 세상을 뜬 지 100년이 넘은 뒤였다.
맹자는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공자보다 위대한 이가 없었다’고 생각
공자와 맹자는 공맹지도라는 말도 있지만, 시대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고 관점 역시 같지 않으며, 개성적인 측면에서는 묵자가 맹자에 더 가깝다.
공자는 관대하고 겸손한데, 맹자는 강직하고 아부할 줄 몰랐다.
천하가 인정하는 존귀한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작위, 나이, 덕이다. 조정에서는 작위를 논하고, 향리에서는 나이를 논하며, 군주를 보좌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작위 한 가지만 중시하고, 나이가 많고 덕을 지닌 사람을 소홀히 하여 나를 부르는가?
장차 크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군주는 반드시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으니, 만약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친히 신하가 있는 곳까지 찾아갔다.
군자는 세 가지 두려워하는 대상이 있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이중톈 – 사람이 오만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도도함이 없어서는 안된다. 오만하면 남에게 교만하게 되고, 도도함이 없으면 남에게 아부하기 때문이다.
아부와 교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겉보기에는 교만한 것 같지만 속에는 아부의 기질이 다분하여 상황에 따라 표변하여 아부를 떤다.
공자는 온()문()이아(爾雅) – 태도가 온화하고 행동거지에 교양이 있다. 맹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맹자 – 내가 가르칠 가치가 없다고 여겨 가르치지 않는 것도 가르침이다.
맹자와 묵자는 협의의 선비들이다. 둘 다 의협심을 발휘하여 의로운 일에 앞장 섰다.
증자 – 경계하고 경계하라! 네가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 역시 똑같이 돌려준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 몽둥이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차이가 없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차이가 없다.

마.  유가와 묵가의 차이점

어린아이가 땅을 기어가다 우물에 빠지려 든다면 이는 어린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라도 달려가 구하게 될 것이다. 누구의 아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겸애 때문이라기 보다, 천성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람이면 누구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친친지애(親親之愛), 즉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인애라는 도덕개념을 확립할 수 있다.
도덕은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하느냐 여부의 문제이다. 도덕은 반드시 초월성이 필요하다. 묵자가 볼 때 친인척을 친해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은 도덕이라기 보다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오히려 친친지애를 넘어 천하의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사랑하는 박애(博愛), 즉 겸애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도덕은 가능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고 초월성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잘하면 종교이고 아니면 위선이다. 겸애는 이상, 인애는 현실로 간주하는 것이 방법이다.
의()가 곧 이()이다. 인류가 도덕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천하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이()는 의()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의()의 길이기도 하다.
유가(儒家)는 천명(天命)을 주장하는 대신 귀신을 부정 – 천명을 모르면 군자라 할 수 없다.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 귀신에 대해 공경하되 멀리하라.
묵자의 천명(天命)비판 –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실제로 보거나 들은 사람이 있는가 여부를 살펴야 한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명()을 직접 본 사람이 없다.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가를 살펴야 한다. 상나라 탕왕이나 주나라 무왕 시대 천하가 잘 다스려지다가, 하나라 걸왕이나 은나라 주왕 때 혼란한 것은 군주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니, 천명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주장하느냐를 살펴야 한다. 천명이 없다는 자는 성공한 사람, 걸출한 인재들로서 그들의 노력으로 성공한 것이다. 폭군은 나라를 망쳐 놓고도 명이 다해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귀신의 존재 –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다. 귀신이 일으키는 일이 많다. 귀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모두 성현이다.

바. 유가와 묵가의 재평가  
  
묵자의 상동 – 이장이 한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통일하고, 그런 다음에 이장이 마을 사람을 이끌어 향장(鄕長)의 의견으로 통일하며, 다시 국군의 의견과 상동하게 만든다. 국군(國君)은 국민의 의견을 통일한 후에 국민들을 이끌어 천자(天子)와 의견이 동일하게 만든다. 결국 천하의 모든 이들이 겸애하게 되므로, 이는 권력집중, 전제정치이다. 천자는 누구보다 영명한 인물이므로 반드시 겸애를 하게 된다.
묵자의 논리에 의하면, 민주집중, 군주독재의 가능성이 높다.
맹자는 군주가 되기 위한 자질로는, 민생에 관심을 가지고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어야 한다. 이런 것을 살펴 보는 표준은 다음과 같다. 50세가 넘은 이가 비단 옷을 입을 수 있고, 70세가 넘은 이가 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자를 홀아비라고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자를 과부라고 하며, 늙어서 자식이 없는 자를 무의탁자라고 하며, 어려서 부모가 없는 자를 고아라고 한다. 이런 네 부류는 하늘 아래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가장 곤궁한 이들이다.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군주로서 합격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다음의 군주의 조건으로, 민의를 이해하고 사실을 존중할 것, 민권을 존중하고 대등한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 – 군주가 합격하지 못ㅎㄹ 경우 그를 내쫓아 고립무원의 외톨이로 만드는 방법과 그를 뒤집어 엎어 들판의 고혼이 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묵자가 볼 때 당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예악의 붕괴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참월하는 참담한 현실이 아니라,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여 강자가 약자를 능멸하고 교묘한 방법이나 권세로 남의 재물을 강탈하는 현실이었다.
맹자와 공자는 통치계급 쪽에 서있다. 공자는 왕도만을 주장했는데, 맹자는 왕업(王業)까지 언급하고 있다.
여민동락(與民同樂) – 천하의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천하의 사람들과 함께 근심하는데, 이렇게 하고도 천하에 왕 노릇을 하지 못한 자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다. 이것이 왕업이다.
묵자는 백성을 위해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 민권보다 군권에 무게를 두게 되었고, 맹자는 군주를 위해 도모했지만, 결과적으로 민권을 군권보다 높은 곳에 두었다.
묵자는 일반 대중들이 물질적 욕구만 있을 뿐 정신적 욕구는 없다고 보고, 경제적 이익에 대해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 착오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협의의 공리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묵자는 무사를 대표한다. 그의 학파는 준군사조직의 성격을 띤다. 장인린은 ‘중국사강’이라는 책에서 이를 무사들의 협동조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단체는 명령과 금지를 엄정하게 지킬 것과 절대 복종을 가장 중시한다. 묵자 전성기 시절에는 당시 모든 묵자들이 무조건 복종하여 불길 속을 뛰어들라고 해도 절대 머뭇거리는 법이 없었다.
새로운 소리의 발현 – 인애와 겸애, 군권과 민권, 개량과 혁명 등 양자의 논쟁거리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 단정짓는 움직임.

3. 유가와 도가의 논쟁
가.  은사 철학자

유가와 도가의 논쟁은, 유-묵가와 도가의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 유가와 묵가는 왜 하려고 하고, 도가는 왜 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는 그들이 대표하는 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묵가는 무사 또는 협사를 대표하고 유가는 문사 또는 유사(儒士)를 대표한다.

은사(隱士) 도가는 은사의 대표이며, 도가사상은 은사의 철학이다.
전국시대에 사()는 자유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일종의 프리랜서이다. 대부의 채읍(采邑)을 관리하는 이들도 사인데, 이런 사를 가신, 전쟁 또한 사에 의존했는데, 이런 사를 전사(戰士) 또는 무사(武士), 갑사(甲士)라 하고, 병법에 정통하여 전략을 짜고 합종연횡의 대책을 마련하는 사를 모사(謀士), 책사(策士)라 한다. 전쟁 외에 담판도 필요하고 변론이나 설전도 필요한데, 이런 사를 변사(辯士)라 한다. 점을 치거나 풍수를 살피고, 의약이나 방중술에 정통한 이를 방사(方士), 아무 일도 없이 놀고먹거나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이를 식객(食客)이라고 한다.
그러나 은사는 누구에게 종속되거나 의지하지 않으며 어떤 일이든 남을 위해 돕는 법이 없다. 또한 어떤 일 때문에 자신의 재능이나 지력을 사용하는 경우도 없다.
은사의 조건 – 능력과 재질을 갖춘 가운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씨를 뿌리고 밭을 매거나 고기를 잡으며 땔감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히 하는 일이고,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도가와 은사는 다르다. 도가는 은사가 아니라 ‘은사철학자’이다. 그들의 입장이나 관점, 태도가 은사적이기 때문에 ‘하지 않음’을 주장하므로, 그들의 사회적 역할은 철학자이다. 관심사는 국가의 대사나 천하의 흥망이다. 사회나 천하가 이미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것을 벗어나려면 무위(無爲)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가는 천하는 이미 구제할 수 없다. 당연히 자기를 구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양주(楊朱)의 관점이다.
선진 도가는 3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양주는 제1단계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노자는 제2단계, 장자는 제3단계를 대표한다.
양주의 핵심주장 - 일모불발(一毛不拔) – 털끝 하나도 뽑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가지 버전이 있다.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았다. 천하를 크게 이롭게 하기 위해 정강이의 털 하나도 뽑지 않았다.
제자 맹손양의 변론 - 1만냥을 주면서 당신을 한 대 때리겠다면 하겠소, 그렇게 하지요, 나라를 주면서 당신의 다리 하나를 자르겠다면 하겠소, 아무 말도 못함.
털은 하찮은 것이지만, 털이 없으면 피부도 없고, 피부가 없다면 사지도 없다. 비록 작고 하찮아도 어찌 가볍게 볼 수 있는가.
이야기의 해석 – 전례를 남기면 안 된다. 오늘 털 한 올을 뽑는다면 내일 피부를 벗기자고 할 것이다. 부분적인 것을 경시하면 안 된다.
저자 – 언어는 다의적이고 또한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내용을 단순하게 줄여버리면 쉽게 왜곡되고 만다. 만약 이러한 단순화 작업이 논적이나 상대 또는 적의를 지닌 누군가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요괴화’될 가능성이 더욱 농후해진다.

나.  양주에서 노장까지

도덕경 – 과거에 유행하던 판본은 도경이 앞에 있고, 덕경이 뒤에 나오는데, 마왕퇴의 판본은 덕경이 앞에 있고, 도경이 뒤에 있다.
장자 – 기원전 369~286년,
노자식 사유방법 – 정언약반(正言若反) – 바른 말은 마치 그것과 반대되는 말과 같다. 따라서 천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능히 천하를 맡길 수 있다는 말은 정언약반으로 해석해야 한다.
강호의 협객들을 보면, 자신의 목숨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남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장자, 대종사 – 샘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땅에 함께 모여서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서로 침으로 적셔준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강물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같겠습니까?
장자, 천운 – 황제가 천하를 다스릴 때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었소. 누구도 자신의 친인척을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소. 요임금은 백성들끼리 서로 친하게 만들었소.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만 친애하니 친소(親疎)의 차별이 생겼소. 순임금이 나서서 백성들을 경쟁하게 만들었소. 어린아이가 태어나 다섯 달 만에 말을 하고 커가면서 사람들을 분별하게 되니 어린아이 때 요절하는 경우가 있게 되었소. 하우(夏禹)가 다스릴 때 백성들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소. 사람들은 모략을 쓰고 싸우면서도 나름의 이치가 있다는 구실과 변명을 하게 되었소. 도적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고, 천하를 위하고 자신은 위하지 않게 되었소. 결국 천하사람들이 모두 경악하고 유가와 묵가가 생겨나게 된 것이오.
노자 제60장 –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가장 좋은 것은 백성들이 통치자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통치자와 백성들이 서로 친근하게 지내는 경우이다. 그 다음은 통치자의 위협으로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나쁜 경우는 통치자가 백성들을 모욕하여 백성들 또한 그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다.  무위의 수수께끼

노장의 무위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가능하다. 과욕(寡欲) 우민(愚民) 반지(反智) 부덕(不德)
욕망 – 명성과 이익이다. 공명(功名)의 우상을 만들지 말고, 지낭(智囊)을 채우지 말며, 중임을 맡지 말고, 총명을 자랑하지 말라.
위무위(爲無爲) 사무사(事無事) 미무미(味無味) – 추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동작이 없는 것을 동작으로 삼고, 성취감이 없는 것을 성취한다.
통치자의 적극적 유위(有爲)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민감하게 느꼈고, 그들은 유위의 배후에 다욕(多欲)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욕망이 사람을 해친다 – 화려한 색깔은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고, 온갖 음악소리는 사람의 귀를 멀게 만들며, 각가지 음식을 내놓으면 사람의 혀가 마비되고 만다.
내가 탐욕이 없으면 백성들이 절로 소박해진다 – 이것이 무위의 다스림인 무위이치(無爲而治)이다. 이러한 무위이치를 위해서, 어질고 능력있는 이를 뽑지 말 것, 귀중한 보물을 중시하지 말 것, 욕망을 드러내지 말 것 – 원문은 불상현(不尙賢) 불귀난득지화(不貴難得之貨) 불현가욕(不見可欲)
대도(大盜)의 도 – 남의 집 안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알아맞히는 것은 성인이고,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이다. 물러날 때 남보다 뒤에 나오는 것은 의로움이고, 손에 넣어도 되는가 여부를 아는 것은 지혜이다. 또한 장물을 나누면서 적절하게 배분하니, 이는 인애이다.

라.  도의 수수께끼

장자, 변무(駢拇) – 인의는 사람의 본성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진 이들이 왜 그리 많은 걱정과 우환을 지니고 있는가? 물오리의 다리는 비록 짧지만 그렇다고 늘여주면 오히려 문제가 될 것이고, 학의 다리는 비록 길지만 짧게 잘라주면 오히려 슬퍼하게 될 것이다.
천지와 만물, 그리고 사람은 모두 자기 나름의 천성을 지니고 있고, 그 천성에 따라 태어나 생활하게 되면 그것이 곧 가장 큰 행복이자 최고의 경계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이 효자라면 달리 효자가 필요 없을 것이고, 천하가 태평하면, 인의나 도덕이 필요없을 것이다. 도덕이 필요하다는 말은 도덕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말끝마다 인의도덕, 예의염치를 외쳐대는 사람은 대부분 덕이 부족한 이들이다.
최고의 도덕은 도덕이 필요 없다. 필요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덕이 있게 된다. 하급의 도덕은 도덕을 잃지 않을까 걱정한다. 걱정할수록 사라지게 되며, 없다면 어떻게 찾는가? 찾아와야 한다. 어떻게 찾는가? 우선 인()에 의거하고 두 번째는 의(), 세 번째는 예악(禮樂)에 의거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의예악(仁義禮樂)은 도덕이 추락한 이후에 나온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가장 좋다는 의의예악이란 것도 사실은 하덕(下德)에 불과하다. 상덕의 특징은 무위이무이위(無爲而無以爲)이고, 하덕의 특징은 위지이유이위(爲之而有以爲)이다.
최고의 도덕이 무너진 이후, 덕을 잃게 되자 사람들은 인()을 강구하게 되었고, 인을 잃게 되자 의()를 찾게 되었으며, 의가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예를 강구하게 되었다. 덕을 잃어버린 이유는 애초에 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대도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니 주공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된 것이고, 춘추시대로 넘어오면서 예악이 붕괴되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실덕(失德)으로 공자가 인을 주창한 것과 상응한다. 전국시대 중엽에 더 이상 공자의 이상이 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맹자는 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전국시대 말엽 맹자의 주장도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순자가 예()를 주창한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그러나 예는 충신이 부족한 것이며 어지러움의 시작이다는 말처럼 예를 말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다. 전국시대 말엽에 예마저 붕괴되니, 드디어 한비자가 법을 꺼내 들었다. 예를 잃으니 법이 생겼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마.  노자와 장자의 차이

장자는 성인을 매도하거나 비난한 적이 있지만, 노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각자의 책에 나오는 성인이란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자가 말하는 ‘성인’은 주로 유가에서 말하는 성인이지만,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노자 자신이 생각하는 성인이다.
노자는 과욕(寡欲)을 주장함과 동시에 과정(寡情), 즉 감정을 절제할 것을 강조했다. 장자는 훨씬 감성이 풍부하다. <<장장>>를 문학작품으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북명유어(北冥有魚) 포정해우(疱丁解牛) 호접몽(胡蝶夢) 등은 인구에 회자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호접몽에서 나비가 두 날개를 팔랑이며 꽃무리 속에 날아다니며 기뻐하는 모습을 허허연(栩栩然)이란 표현을 쓰지만, 잠에서 깨어 나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실감을 거거연(蘧蘧然)이란 표현을 보면 문학성이 풍부하다.
동일한 문제, 동일한 결론에도, 노자는 논리적 추리를 사용하였고, 장자는 주로 인생 체험에 의지하고 있다. 노자는 논리를 장자는 감오(感悟)를 중시했다.
노자의 도는 무미건조하고 냉랭하며 딱딱하고 느낌이 없어 감정이 끼어들 곳이 없다. 장자의 도는 생동감이 있고 정감이 넘쳐나며 소리나 색깔이 있어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장자에게 도()란 말로 할 수 없지만 체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노자를 읽으면 지()를 얻고, 장자를 읽으면 혜()를 얻는다.
지란 교육을 통해 학습하여 배울 수 있고 전수될 수 있는 능력이나 방법으로 사회적인 것인 반면, 혜는 천부적인 기질이나 자질로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으로 주로 개인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노자를 읽으면 치국에 도움이 되지만, 장자를 읽으면 수신에 도움이 된다.
노자 – 군대가 너무 강대하면 실패하기 쉽고, 나무가 장대하면 베어지기 쉽다. 뛰어난 장수는 무용(武勇)을 드러내지 않으며, 잘 싸우는 이는 성내지 않고, 적과 싸워 잘 이기는 이는 맞서 싸우지 않으며, 사람을 잘쓰는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하다.
노자의 무위는 유위를 위한 거짓 무위이지만 장자는 진정한 의미의 무위이다.
소요(逍遙)란 아무 하는 일이나 생각없이 거닌다는 뜻으로 진실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고, 생명의 가치는 바로 자유에 있다.
장자는 역대로 많은 이들이 생명 이외의 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하면서, 소인(小人)은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고, 사인(士人)은 명예를 위해, 대부(大夫)는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으며, 성인은 천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천성을 위배하여 자신의 생명을 해쳤다는 점에서 동일하므로 결코 따를 것이 아니다.
장자철학은 미학적이다. 그의 사상이 특히 후대의 문학예술이나 예술 영역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  유가와 도가의 재평가

도가는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유가는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도는 무위이고, 덕은 유위이다. 도는 규율이고 덕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규율은 원래 하는 것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방식은 나름의 조작이 있어야만 한다. 유가에서는 덕뿐만 아니라, 도도 유위이다.
유가가 볼 때 도의 세상은 먼 과거로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자신들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은 덕의 시대이다. 덕을 지켜 도를 구하는 것이라 한다.
도가는 끝까지 도를 숭상하였고, 유가는 덕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유가는 덕가라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노자 – 큰 악기 소리는 오히려 소리가 없고, 가장 큰 형상은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마왕퇴의 판본에 의하면 대기면성(大器免成)이라고 되어서, 큰 그릇은 쓸 데가 없다라는 뜻이다.
도가는 대범하고 유가는 실제적이다.
진정한 은사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해도 그저 혼잣말을 할 따름이며 절대로 남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도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명이며, 도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명이다. – 천명론
도가는 천도를 이야기하고 묵가는 귀신을 믿었을 뿐 천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유가는 인도에 대해 말하고, 천명을 믿는 대신 귀신은 믿지 않았다. 도가는 무위하여 얻는 것이 없었고, 유가는 유위하였으나 역시 얻은 것이 없었다. 도가는 얻음이 없어 도에 동화하려고 하였으나, 유가는 얻는 것이 없어 덕에서 얻고자 했다.

5. 유가와 법가의 논쟁
가.  피에 물든 사상

유가나 묵가, 도가는 상호 심각한 논쟁을 통해 격렬하게 투쟁했지만, 말이나 글에 한정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법가는 자신들의 주장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피로 제단을 붉게 물들였다.
상앙 – 기원전 390~338, 맹자, 장자와 동시대 사람이다. 진효공(秦孝公)을 수차례 알현하여 신임을 얻었고, 진나라는 상앙으로 인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진나라 효공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자, 상앙이 모반할 것이라고 밀고 하여 죽게 되었다.
한비자 – 상앙은 비참했지만 한비는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조차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선진시대 법가의 마지막 인물이자 법가 학설의 집대성자이다. 기원전 280~233, 한비는 어눌하여 변설에 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분(孤憤) 세난(世難) 오두(五蠹) 등 10여만 자의 글을 저술하여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내놓았다. 자국의 군주에게 환대받지 못했지만, 진시황은 그를 좋아했다. 진시황 –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의논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비를 모함하여 죽게 한 자는 이사(李斯)이다. 그들은 모두 순자의 학생들이었다. 동학이라고 무조건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앙이 죽은 이유 – 상앙이 도주 중 진나라 변경에 이르러자, 손님이 객사에 묵을 때 증명서가 없으면 손님의 범죄자이면 똑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하여 발각되었다.  작법자폐(作法自斃)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상앙이 예전 태자를 벌하지 못하고 태자의 사부의 코를 베는 형벌을 준 것이 쫓기게 된 연유이다. 옛 말에 개를 때리려면 주인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잇는 것이다.
하늘은 무정하고 법은 무사(無私)하다. 인정이나 사사로움이 끼어들면 법이 성립될 수 없고 하늘도 존재할 수 없다.
상앙의 법은 정리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많았다. 연좌제도 그렇고, ‘길가에 재를 뿌리면 처벌한다’는 것도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귀족들이 재를 뿌릴 일이 없으니 문제로 지적된다.
상앙이 강력하게 법을 집행할 당시 진나라의 치안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 ‘길가에 물건을 떨어뜨려도 줍는 사람이 없고 산간에 도적이 없으며,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하고 의식이 풍족했다’는 것이다.
상앙의 법은 군왕의 통치를 유지하는 수단이었을 뿐 백성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이 없었다.
한비 – 군왕에게 유세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명성을 좋아하는 상대에게 이익에 대해 말하면 분명 저속하다고 할 것이고, 상대가 이익을 좋아하는 데 명성에 대해서 말하면 고리타분하다고 여길 것이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상대는 당신이 그 정도밖에 안된다고 할 것이고,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말하면 당신이 너무 말이 많다고 투덜댈 것이다. 말이 간결하고 함축적이라면 상대는 당신이 너무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남김없이 다 말해버리면 당신이 지나치게 방자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루쉰 – 저명한 학자와 말할 때, 그가 말한 것에 대해 가끔씩 모르는 척해야 한다. 너무 모르면 무시를 당할 것이고 너무 아는 척 하면 싫어할 것이다.
함부로 칼을 놀리다가는 결국 자신이 위태롭게 된다. 칼을 헌상하는 이도 위험하다. 칼을 바치는 것은 결국 칼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칼을 시험함에 사람인들 어찌 예외가 되겠는가
나.  모사의 철학

법가가 주장한 법술은 왜 실행하기 어려운가, 환심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들과 조정의 대신들의 환심을 살 수 없다. 군왕이 법술을 사용하면 대신들이 권세를 농단할 수 없고, 근신들도 권세를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비 – 하늘 아래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 군왕의 신체, 지위, 명망, 권세이다. 유생, 협사 식객, 종횡가, 공상업자 등을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부류로 간주하고, 이들을 모두 없애고 농민과 전산만 남겨 놓아야 한다.
신하를 지나치게 친애하면 군주의 몸이 위태롭게 되고 신하가 지나치게 고귀하면 군주의 자리가 바뀌게 된다. 처첩 간에 등급이 없으면 적자가 위태롭게 되고, 군주의 형제가 복종하지 않으면 사직이 위태로워진다.
묵자 – 군주자 왜 필요한가 – 천하의 뜻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금수와 같은 무정부 혼란 상태를 벗어날 수 있으며, 서로 더불어 사랑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장인린, 중국사강 – 묵자야말로 세계에서 첫 번째로 이지의 등불로 인간세상을 철저하게 살폈던 인물이다.
도가 – 개인의 행복으로 세상의 행복을 기원한 학파
유가 – 집권자의 시각으로 천하를 유지하려는 학파
법가 – 군주의 시각으로 도모, 군주를 위해 천하를 도모한 것이지, 천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군권지상, 군주유일
한비, 오두 – 성인은 옛것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항상 옳다고 하여 본받지 않았으며, 세상의 일으 ㄹ따져서 이에 따라 알맞은 대비책을 마련한다.
법가의 성공요인 – 현실직시, 시대와 함께, 횡행패도, 양면삼도
다.  횡행패도

도가는 천도(天道), 묵가는 제도(帝道), 유가는 왕도(王道), 법가는 패도(覇道)
패도 – 제환공, 진문공 등 다섯 패자의 치도라는 뜻이다.
패주가 천하를 정돈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주나라 천자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이를 존왕(尊王)이라고 한다. 존왕의 배후에는 칭패(稱覇)가 있다. 주나라 천자는 명의상의 공주(共主)이고, 그 밑에 패주이다. 공주는 지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지존(至尊)이고, 패주는 실력이 강태하기 때문에 지강(至剛)이다 – 지존지강
한비는 무위이치(無爲而治) 주장
라.  양면삼도

법가의 기원은 춘추시대 관중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관중 이후 법가는 세 갈래 유파 – 신도(愼到)를 대표로 하는 유파는 권력과 위세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 군주가 멍청해도 총명한 사람을 임명하여 관리하면 된다고 하므로 세치(歲治), 즉 권세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므로 세파(勢派)라고 한다. 신불해를 대표로 하는 유파는 정치적 모략을 방법으로 삼아서, 군주가 모략을 지니고 있으면 신하들이 정직하고 성실하여 감히 말썽을 피우거나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 술치(術治) 술파(術派)이다. 마지막으로 상앙은 규정의 방법을 따라 국가에 제도가 있으면 백성들은 법도를 지키게 되고 일을 하는데 규정이 있으면 질서가 잡힌다는 법치, 법파이다.
세, 술, 법 모두가 중요하지만, 결국 법으로 통일시켜야 한다고 여겨서 이를 법가라고 부른다.
양면 – 한비가 말한 이병(二炳)으로, 두 개의 칼자루이다. 그것은 형()과 덕()이다. 상과 벌은 행정수단이자 사법수단으로 도덕과 무관하다.
삼도 – 세, 술, 법이다.
엄한 집안에는 사나운 노복이 없지만,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기 마련이다.
만승지국의 군주나 천승지국을 다스리는 왕의 후비나 부인 가운데 만약 자신의 아들이 태자가 된다면 군주가 일찍 죽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는 나이 오십이 되어도 여전히 여색을 좋아하지만 여자는 나이 삼십만 되어도 미모가 쇠한다.
마.  문제는 인성이다

한비는 노자의 냉정, 묵자의 공리를 이어 받았다. 묵자가 천하의 이익을 말하면 한비는 개인의 이익을 말하고, 묵자가 서민의 실용을 말하면, 한비는 군주의 실용을 말했다.
공자는 내용과 형식을 가죽과 털에 비유하였지만, 한비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얼음과 숯의 관계로 본다. 얼음과 숯은 같은 그릇에 오래 있을 수 없으며, 추위와 더위는 같은 때에 닥쳐 오지 않는다. 한비의 모순론.
예란 인성의 모양이고, 문이란 바탕의 장식이다. 그래서 화씨의 구슬은 다섯 가지 색으로 꾸미지 않았고, 수후의 진주는 은이나 황금으로 꾸미지 않았다.
예악이 아름답고 훌륭할수록 인심이나 인성이 나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맹자는 성선설이라기 보다 인간은 선을 향한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환경과 조건이 그렇게 만든다고 했다. 맹자 - 인성이란 선해질 수 있는 것이자 당연히 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공경지심, 시비지심은 사람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다.
순자 – 인성은 성()과 위()로 나누어, 성은 천성적이고, 위는 배워서 능할 수 있고 전념하여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성위지분(性僞之分)으로 성과 위의 구분이다. 인위적인 위가 있어야 선이 될 수 있다. 자연적이고 천부적인 성은 악일 따름이다.
순자 – 세상 모든 것은 네 가지 등급이다 – 무기물은 물질은 있으나 생명이 없다. 물과 불은 기는 있지만 생명이 없다. 식물은 생명은 있지만 지각은 없다. 금수는 지각은 있지만 인의는 없다. 사람은 물질, 생명, 지각은 물론이고 도덕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천하에서 가장 고귀하다.
바.  유가와 법가의 재평가

공자는 인의와 예악을 모두 말했고, 맹자는 그 가운데 인의에 치중했고, 순자는 예악에 치중했다. 순자는 인성 가운데 악한 부분은 선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개조하고 진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법가에 가까운 발언이다. 한비는 인간의 자연적 속성과 사회적 속성이 모두 악하다고 주장하고, 스승이 전해준 네 가지 법도 중 세 가지만 선택하여, 군권과 법도, 그리고 형벌 외에 예악은 필요치 않다고 하였다.
예는 서인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은 대부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형치와 법치는 사람들고 하여금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예치와 덕치는 아예 나쁜 짓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한비의 법치 삼원칙 – 법이 통일되고 고정되어 백성들이 모두 알아야 하는 것
고명한 군주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 사람들마다 자각적으로 착한 일을 행하기를 바라면 안 된다. 오직 그들이 나쁜 짓을 못하도록 하는 데 주의하면 그뿐이다.
단 하나의 방법 – 엄격하고 준엄한 형벌로 방지책을 마련하여 감히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없도록 할뿐더러 아예 생각조차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자의 방법은 실천하기 힘들다. 실천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척하는 방법 밖에 없다.
가장 나쁘지 않은 제도가 가장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그것이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 원인과 결과
가.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공자는 민간 사상가의 신분으로 천하 대사에 자신의 의견을 내놓은 선례를 만들었다. 일단 작은 선례가 있게 되자 이후에는 마치 봇물이 터지듯 수많은 이들이 각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하여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쟁명(爭鳴), 즉 다투어 이야기함이다.
월 듀런트가 역사 속의 영웅들이란 책에서 공자를 인류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선정하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그 외에 아홉 명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코페르니쿠스, 베이컨, 뉴턴, 볼테르, 칸트, 다윈이다.
안회 – 공자의 도는 너무 커서 천하가 받아들일 수 없다. 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후에야 더욱 군자의 본색이 드러나게 된다.
안영 – 제나라의 중신, 유자를 중용할 수 없는 이유는, 언변이 좋고 말재주가 있어 법으로 규제하기 힘들다. 자신의 재주를 믿고 오만하여 윗사람이 통제하기 어렵다. 상례를 중시하여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탕진하니 그들의 예법으로 풍속을 교화할 수 없다. 제후들을 찾아 다니며 유세하며 관직이나 후한 봉록을 요구하니 나라를 다스리게 할 수 없다.
나.  사람이 근본이다.

주공이 만든 예악제도
조상에 대한 제사 – 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여기는 것이지, 그들이 과연 존재하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인도주의이고, 신을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이지적인 태도이다.
성인이란 어떤 인물인가 – 맹자는 인륜의 지극함이다. 즉 가장 도덕적인 인물이라는 뜻이다. 백이는 성지청자(聖之淸者), 이윤은 성지임자(聖之任者), 유하혜는 성지화자(聖之和者), 공자는 성지시자(聖之時者)라고 하였다. 이들은 후성(後聖)이다.
다.  거대한 한가족

예란 일종의 등급제도이다. 오복이란 상복제도이다. 가장 높은 등급은 참최(斬衰)인데, 가장 거칠고 굵은 베로 만든 상의다. 신하가 군주를 위해,아들은 아비를 위해,아내는 남편을 위해 이 옷을 입는다. 그 다음 재최(齋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緦麻)이다. <그외 542페이지 참조>
외삼촌은 모계 친족으로 어머니와 성이 같다. 고모부와 이모부는 집안 사람이 아니다. 성이 다르다. 고모는 부계이고, 이모는 모계이므로, 이모부가 고모부보다 멀다. 일반적으로 국사는 외삼촌에게, 집안 일은 고모에게 물어 본다.
예의 핵심은 등급과 질서다. 이런 등급이 마련되면 사회 전체가 분명하게 질서를 갖추니, 이를 윤()이라 한다.
라.  운명의 전환

예악제도를 실행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 집안사람들이므로 서로 친근하고 사랑해야 하니 이는 인()이다. 서로 도와야 하니 이것이 덕()이다. 장유유서가 있어야 하니 이는 예()이다. 즐겁고 화기애애해야 하니, 이것이 악()이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법제와 봉건제를 시행했다. 종법제를 유지하기 위해 적서(嫡庶)제를 시행
한나라와 조나라는 연합하여 주나라를 공격하여 주 왕국을 동주와 서주로 양분.
마.  사인의 등장

진한 이전의 사는 가장 낮은 등급의 귀족. 계급은 귀족, 평민, 노예이고, 다시 귀족은 천자, 제후, 대부, 사()이다. 사는 영지가 없다. 사는 전에 대한 재산권만 있을 뿐 통치권은 없다. 심지어 재산권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귀족으로서 사는 참정권과 참군권, 제사권을 가진다. 성인이 되면 관()을 쓰고, 평민의 성인은 책()을 쓴다.
사회가 극변하여도 사인은 조급할 필ㅇ가 없다. 신흥귀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능력도 있고, 수도 많은 사인이다.
사회 급변으로 가장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가 사인이다.
전국 말기에 사인을 가장 많이 데리고 있던 이들 네 명은, 제나라 맹상군 전문, 조나라 평원군 조승, 초나라 춘신군 황헐, 위나라 신릉군 위무기이다.
각기 식객들이 3000명 이상인데, 평원군에게는 모수자천의 모수가 있었고, 춘신군에게는 주영, 신릉군에게는 후영과 주해 등이 있었다.
바.  제자백가의 매력은?

제자백가의 논의가 재미있기 때문이고, 때로 자신의 관념에서 탈피하여 보다 넓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들의 논쟁을 따라가 보면 더욱 심오한 문제에 이른다.
선진제자는 우리의 사상을 단련시킬 수 있는 사상의 소유자들이다. 이런 사상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두뇌는 더욱 단련될 것이고, 우리 자신 역시 이를 따라 전진하고 성장할 수 있다.
분별이나 망상을 떠나 깨달음과 참모습을 환히 아는 지혜인 반야나 정등정각도 모두 자신이 직접 깨달아야 한다. 지식은 사회에 속하는 것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지혜는 개인의 것으로 그저 깨우침을 인도할 수 있을 뿐이다.


7. 과거를 이어 미래를 열다.
가.  회색의 승선표

공자 –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 이런 말을 계승해야 할까
한비자 – 가혹한 정치를 어떻게 이어 받을 것인가
나.  묵자와 양주

묵자는 천하를 이롭게 하기 위해 장딴지에는 솜털이 없었고 정강이에는 털이 다 빠졌다는 말이 있다. 양주는 털 한올이라도 빼지 못하게 하였는데, 동시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는 묵자와 양주의 사상이 매우 심오하고 독특하고, 그것이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어 천하를 풍미하고,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드니 결국 소리 모숨없이 사라져 버린다.
묵자는 사회의 공평함과 정의에 대한 문제를, 양주는 개인의 권리와 존엄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다.
누군가 묵자에게 물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의를 행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만 의를 행하고 있으니 고단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그만 두는 게 어떠냐? 묵자는 식구가 열 명인 가정에 한 사람만이 밭을 갈고 아홉 사람은 한가하게 놀고 있으니, 유일하게 밭을 가는 사람이 어찌 필사적으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고 대답하였다. 백성들도 힘들어 찬성하기 힘들었다.
묵가의 사람들은 반드시 거친 옷에 짚신, 나막신을 신고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저녁에도 쉬지 않는지라 장딴지에 솜털이 남아나질 않고 정강이 털이 다 빠졌다고 했다. 묵자의 대제자인 금활리가 스승을 따른 지 3년 만에 그의 손발에 못이 박이고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렸다. 묵자조차 애처로워 상을 차려 대접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공자는 73세, 순자는 76세, 정자는 84세, 묵자는 93세까지 살았지만, 한비자는 46세로 졸하였다.
묵자는 고단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삶,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평등한 삶뿐만 아니라 평안한 생활도 원했다.
묵가는 하나의 학파일 뿐만 아니라 단체이며 일종의 준군사조직이다. 이 단체에는 거자(巨子)라는 최고의 지도자가 있었다. 거자는 선생인 동시에 지도자로 제자들에 대해 생사여탈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묵자가 거자가 되었을 때 수하에 180명의 부하가 있었다. 묵자의 명령이라면 불구덩이에 뛰어들 준비가 되었으니, 이를 부화도도(赴火蹈刀) 즉 불길에 뛰어들고 칼날을 밟는다고 한다. 사불선종(死不旋踵) 즉 죽어도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양주 – 지혜로움이 귀한 이유는 나를 보호하기 때문이며, 폭력이 천한 이유는 사물을 해하기 때문이다.
다.  노자와 장자

묵자는 사회에 관심이 있으나, 노자와 장자는 인생에 주의를 기울였다. 노자는 인생의 지혜에, 장자는 인생의 태도에 치중하고 있다.
노자 – 약한 것이 강하다. 사람이 가장 부드러울 때가 언제인가, 바로 살아 있을 때이다. 죽은 이후벝 가장 단단하다. 세상과 싸우지 않아야 가장 안전하고, 풍부하여 없는 게 없다.
아내를 고를 때 못생긴 여자를 고르면 도망갈 위험이 없다. 그러나 절대가인을 고르면 ‘붉은 살구가 담장을 넘는다 홍행출장(紅杏出墻)’고 항상 문제가 있다.
자고로 도둑당할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도둑의 눈길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있다. 높은 것은 꺽이기 쉽고, 하얗고 깨끗한 것은 더럽혀지기 쉽다.
진정한 용기란 갑작스레 재난이 닥쳐도 놀라지 않고, 까닭없이 화를 당해도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장자, 천도 – 환공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윤편(輪扁) - 수레바퀴 만드는 사람 – 이 물었다. 성인의 글을 읽고 있다는 말에 옛사람이 내버린 찌꺼기를 읽고 있다고 말하면서,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하게 깎아 헐렁해지면 고정되지 않고 너무 빠듯하게 깎아 빡빡하면 제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빠듯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놀림과 마음이 서로 호응하여 이루어지는데 이런 느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만 분명 그 안에 정교한 기교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제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으며, 제 아들도 저에게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게 된 것입니다. 옛날 사람은 그가 전할 수 없는 정신과 함께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매는 하늘을 날아야 하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헤엄을 쳐야 되니 이것이 바로 진실이며, 또한 자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고된 생활인가, 편안한 생활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한가, 자유로운가의 문제이다.
공자의 명언 중,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장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다.
라.  다시 법가를 말하다.

법가는 전혀 관용적이지 않다.
법가는 왜 가혹하고 잔인한가. 시대적 배경, 원류, 그리고 사명이라는 원인이 있다.
법가의 최대 장점은 최신의 국가제도를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법치는 범죄만 통제할 수 있을 뿐이며, 선을 행하도록 할 수는 없다.
마.  사랑의 외침

묵자는 사회, 장자는 개인, 한비는 국가에 관심이 있었다면 공자가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분야는 문화이다.
유가가 중국문화에 제공한 핵심적인 가치관은 인애, 정의, 자강이다.
바.  정의와 자강

당신에게 천하를 줄 것이니 목숨과 바꾸라고 한다면 그럴 사람은 없지만,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친다. 맹자는 의가 몸보다 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측은지심은 인이며, 수오지심은 의다.
기우제를 올리지 않아도 비가 내릴 때가 되면 내리는 것이고, 아무리 기우제를 올린다고 해도 내리지 않을 비는 영영 내리지 않는다.
자연에 대해 공자와 맹자가 회피적인 태도를 취하고, 노자와 장자가 철학적 태도를 취했다면, 순자는 과학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순자, 천론 – 하늘의 운행은 한결같으니, 요 임금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 임금으로 인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위적인 노력이 없으면 본성이 절로 아름다워질 수 없다.


8. 요약 후기
과연 제자백가의 사상을 이중톈씨의 설명으로 대충 훑어 보았는데, 책 내용 그대로 우리의 두뇌를 단련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천하대사에 대한 온갖 설명과 관점들을 보면서, 지금 현재 한국의 현실에도 적용되어야 할 바가 아주 많아 보인다. 구체적인 감상이나 여기서 배운 지혜들은 나중에 총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보고, 개인들이 각자 정독해 볼 가치가 있다는 것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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