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피터 드러커
Post-Capitalist Society - Peter F. Drucker
1950년대 초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한국은 7년 전 일본이 파괴되었던 것보다 더 파괴되었다. 그때까지 한국은 내내 후진국이었고, 특히 일제가 36년간 강점하는 동안 일본은 체계적으로 한국기업과 한국의 고등교육을 말살시켰다. 그러나 한국은 유능한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미국식 대학교육을 실시하였고, 경영을 도입하고 적용함으로써 25년만에 아주 발전된 나라가 되었다.
헝가리 출신 노벨수상자 기오르기 Albert von Szent Gyorgyi는 생리학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그의 스승은, 기오르기가 헛배가 부르는 것에 연구하겠다고 하자, 매우 흥미있군, 헛배가 불러 죽은 사람은 없내, 만약에 어떤 결과를 얻게 된다면 다른 분야에 적용해서 효과를 내야하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기오르기는 신체의 화학작용에 관한 기본적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결과 효소를 발견하였다.
지식들을 지식의 세계로 통합시키지 못하는 인문교육과 교양교육은 인문도 교육도 아니다. 통합하는 대신에 인문교양과목들은 분해되어 버렸다.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들은 점차 지적인 오만과 비생산적으로 될 것이다. 모든 전문화된 지식들이 제공하는 중요한 새로운 통찰력은 더욱 더 분리된 다른 전문지식으로부터 나오는데, 그 전문지식마저도 또 다른 지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서평
이 책은 피터 드러커의 평소 생각이 최고로 압축된 책이다. 내용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언급하는 영역이 정치와 경제 국가와 국제적 이슈를 모두 망라하고 있다.
기본적인 사전 지식이 있다면, 이 사람의 글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추상적인 앎의 나열로 오해할 수도 있다. 벌써 몇 권의 책을 요약하면서 이 사람의 논지가 글을 작성하기 전에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제 상당량이 머리에 축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최고의 한 구절을 꼽는다면, “”연결이 비결”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몇 배는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구체적인 적용에 애로를 가지는 것은 기존의 지식들을 연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드러커가 알면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라면 수천년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위 속담이 대가의 입에서 나오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이다.
서문
전환
서양의 역사에는 수백년 마다 한번씩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다. 수십년 동안에 걸쳐 사회는 사회 자체를 다시 조정한다. 세계를 보는 관점, 기본적 가치관, 사회적 정치적 구조, 예술을 보는 관점 그리고 주요한 사회적 기관들을 재조직한다.
13세기 유럽에는 갑작스럽게 새로운 모습의 도시들이 생겨났다. 도시 길드가 새로운 지배적 사회집단으로 등장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들 간에 교역이 이루어지고, 고딕양식의 건축물, 실용주의적 상인계급의 등장, 도시의 대학들의 발생이 새로운 전환이었다.
200년 뒤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하여 책을 인쇄한 이후 1455년부터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인 1517년 동안에 그 다음의 전환이 일어났다. 바로 르네상스의 전성기였다.
그 다음의 전환은 1776년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독립운동,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 해부터 워털루 전쟁이 끝난 1815년까지 40년 동안이었다. 이 때 각종 주의가 탄생하였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의 시대 또한 하나의 전환의 시대이다. 그러나 이번의 전환은 서양사회와 서양역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제대군인원호법 때문에 발생된 것으로 본다. 지금의 전환이 언제 완료될 것인지...
200년 전 미국 독립운동에 의해 자극받아 일어난 전환은 60년이나 지나서야 처음으로 이해되고 분석되었는데, 그것은 1835년과 1840년에 발표된 토크빌의 두 권으로 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였다.
새로운 사회는 탈자본주의 사회이다. 반자본주의사회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치는 이제 생산성과 혁신에 의해 창조되는데 생산성과 혁신은 지식을 작업에 적용한 결과이다. 생산성 있는 곳에 지식을 배분할 줄 아는 지식경영자 즉 지식전문가, 지식 피고용자들이 지식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다. 모든 지식인들은 조직들에 의해 고용되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 하의 피고용자들과는 달리 생산수단과 생산도구를 함께 가지고 있다.
탈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적 도전은 지식작업과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일 것이다. 그러나 탈자본주의사회의 사회적 도전은 탈자본주의사회의 제2의 계급, 즉 서비스근로자의 존엄성일 것이다.
1890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마르크시즘과 공산주의의 몰락을 상징하는 결정적 사건이라면, 1991년 2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항하기 위해 형성된 범국제적 동맹은 국제정치 무대에 있어 주권국민국가 sovereign nation state가 중심적이었던 4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정치가였던 보뎅 Jean Bodin이 1576년 국가론에서 처음으로 주권국가의 개념을 제안한 이래 400년간 국민국가는 국내외적으로 단 하나의 정치적 권력기관이 되어 왔다.
정치이론이나 헌법은 아직도 여전히 주권국가에 대해서만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 국민국가는 꾸준히 더 강력해지고 더욱 지배적으로 되었다.
국민국가가 시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국가는 더 이상 절대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국민국가는 국가의 다른 공공기관들과 다른 기구들 그리고 다른 정책수립가들과 권력을 점진적으로 나누어 가질 것이다.
전근대적 철학자들의 마지막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라이프니츠 1646~1716 는 그의 생애의 많은 부분을 헛되게도 크리스찬 국가의 통일을 복구하려는 시도에 이바지했다.
루소는 사회가 개인을 통제할 수 있으며 또한 통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100년 이상동안 사회에 의한 구원을 약속해준 가장 강력하고 가장 호소력있는 세속적 신앙은 마르크시즘이었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재등장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슬람의 근본원리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슬렘 세계의 젊은이들은 40년 전에는 열렬한 마르크시스틀이었다.
부패, 탐욕, 권력욕, 질투와 상호불신, 독재와 음모, 거짓말, 도둑질, 고발 그리고 무엇보다도 냉소가 만연하게 되었다. 공산주의는 사회체제로서 영웅을 만들었다. 그러나 신앙으로서 단 한명의 성인도 갖지 못했다.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미덕도, 선함도, 이타심도 없고 오직 자기 이익과 위선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냉소는 어쩌면 당연하다.
십자군 원정은 유사이래 가장 큰 쇼핑 여행이었다.
제1부 사회
제1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사회로
1750~1900년 사이 150년 동안 자본주의와 기술은 이 지구를 정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였다. 지식은 항상 어떤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행동에 적용되게 되었다. 지식 그 자체가 자원이 되고 효용이 되고 말았다.
지식의 의미 변화의 첫번째 국면인 100년 동안 지식은 작업도구와 제조공정 그리고 제품에 적용되었다. 이것이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1880년 경부터 2차 대전 무렵에 절정기를 이룬 두번째 국면에서 지식은 작업 그 자체에 적용되었다. 이것은 생산성 혁명으로 연결되었고, 그후 75년만에 생산성 혁명은 프롤레타리아들로 하여금 소득이 거의 상위 계층과 맞먹는 중산층 부르조아로 바꾸어 놓았다.
마지막 국면은 2차 대전 후에 시작되어, 지식이 지식 그 자체에 적용되어지고 있다. 이것이 경영혁명이다.
13세기에 발명된 안경이 보급된 것처럼 빨리 보급된 현대의 기술은 거의 없다. 1270년 베이컨의 광학실험에서 파생된 노인용 독서안경은 1290년 아비뇽에서 교황재판에서 사용되었고, 1300년 경 카이로에서 술탄이 사용하였고 1310년 이전에는 원나라의 황제가 사용하였다. 19세기의 발명품 가운데 재봉틀과 전화기만이 그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었다.
1840년 경에 이르러서 증기기관은 유리 제조공정에서부터 인쇄물 제조공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조공정을 단순 제조공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18세기에 등장한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에 의해 야기된 사회적 전환이 서유럽에 완전하게 효과적으로 보급되는 데는 1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식의 새로운 의미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은 전형적으로 꽤 많은 서로 관계없는 독립적인 사건들이 발전되고 하쳐져서 나타나게 된다.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하늘과 바다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적의 비행기와 군함들의 위치를 신속히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를 개발하는데 국방성은 막대한 투자를 할 의사가 있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1864~1920가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은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베버의 주장에는 납득할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 자본주의와 기술진보가 지금과 같이 사회전반적으로 유행하도록 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결정적인 하나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1700년경 유럽에서 일어난 지식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이다.
플라톤 이후 서양에는 지식의 의미와 기능에 관한 두 가지 이론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유일한 기능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으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지적 도덕적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을 지식의 기능으로 생각하였다.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 BC483~414는 지식의 목적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여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로타고라스에 의하면 지식은 논리이고 문법이고 수사학이다.
동양의 유학자에게 지식은 프로타고라스와 같고, 도가와 선승들에게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의미이다. 동양에서 지식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실용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실용성은 기능으로 정의되었다. 즉 skill이나 그리스어로 techne였다.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는 모두 techne를 중요시하였다. 서양에 있어 기능을 경시한 것은 18세기 영국의 신사계급 때가 처음이었다. 기능의 경시풍조는 빅토리아시대에 극에 달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에게 있어서도 techne는 필요한 것이지만 지식은 아니었다. 기능은 하나의 특수한 분야에 적용되는 것이었지 일반적인 원리는 아니었다.
산업혁명
1700년경부터 시작한 technology는 techne에 지식을 조직하고 체계화하고 목적지향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뜻하는 logy를 조합하여 만든 말이다.
최초의 기술학교인 프랑스의 토목전문대학 Ecole Des Pontes et Chaussees은 1747년에 세워졌고, 1770년 독일에서 최초의 농업학교가 그리고 1776년에는 광산학교가 설립되었다. 1794년에는 프랑스에서 최초의 공과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Ecole Polytechnique가 설립되었다.
기능에서 기술로 넘어가는 이 거대한 변화의 위대한 기록은 디드로 Denis Diderot 1713~84와 달랑베르 Jean d’Alembert 1717~83이 1751~72년 사이에 편집한 백과사전에 있다.
실을 뽑고 베를 짜는 기능의 항목은 기술자가 아닌 정보전문가에 의해 쓰여진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100년을 기다려야 했다.
독일의 화학자 리빅 Justus Liebig 1803~73은 화학비료를 만드는데 최초로 과학을 적용하였으며, 육류의 추출물을 보관하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기술학교와 백과사전은 경험을 지식으로 바꾸고 도제제도 대신 교화서를 만들었다. 비밀주의를 공개적인 방법으로 전환시키고 지식의 응용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기술변화의 속도는 장인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자본을 요구하게 되었고, 새로운 기술은 생산의 집중화를 필요로 하였는데, 그것은 공장의 등장을 의미하였다.
지식은 수천 수만의 조그마한 개인 작업장이나 시골 마을의 가내수공업 공장에서는 적용될 수 없었고, 하나의 큰 지붕 아래 생산을 집중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750년에 이르기까지 대규모의 사업은 개인이 아니라 정부에 의한 것이고, 구대륙의 제조업체 중 최초의 가장 큰 제조업체는 베니스 정부가 소유한 군수공장이었다.
아담 스미스 Adam Smith 1723~90가 국부론을 출판할 1776년에 와트는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를 얻었다. 국부론에서 기계나 공장 산업적 생산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장인기술 중심이었다. 공장이나 기계는 리카도 David Ricardo 1772~1832의 경제학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 가장 통찰력있는 영국의 사회 비평가겸 소설가인 오스틴 Jane Austin, 1775~1817의 소설에 공장이나 공장근로자, 은행 등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1830년경 프랑스의 자본주의 사회를 묘사한 발자크 Honore de Balzac 1799~1850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에 자본주의, 공장생산 시스템, 기계등은 디킨즈 Charles Dickens 1812~70의 후기 소설의 중심적인 배경이 되었다.
공장 지대에서의 유아 사망률은 급속히 내려갔고, 수명은 즉각 길어졌는데 유럽에서 엄청나게 인구가 증가한 계기가 되었다.
생산성 혁명
1950년쯤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시즘은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본주의에 불가피한 내재적 모순, 프롤레타리아의 소외와 착취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 자체를 한번에 무너뜨린 것은 생산성 혁명이다.
호머의 서사시가 나온 100년 후에 헤시오드의 일과 나날이라는 책이 나왔다. 버질은 권농가를 써서 농사꾼의 일과를 노래했다.
테일러는 갈등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보았다. 노동자를 생산성 있게 만들어 그들이 꽤 넉넉한 보수를 벌 수 있도록 하려고 작정하였다. 지적 역사에 있어 테일러보다 더 큰 영향을 준 인물은 거의 없었다. 역사는 그가 옳았고 지식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지식을 작업연구에 적용하는 것은 그 당시 노동조합에는 금기였다. 노동조합은 미국 역사상 테일러에 대하여 매우 잔혹한 인격말살운동을 전개하였다.
테일러는 숙련을 요하는 작업은 없다는 주장이 노동조합에게는 엄청난 죄악의 주장이었다. 테일러는 작업 분석이 보여주는대로 그것이 수행되어져야 하는 방식대로 작업을 할 의사가 있는 어떤 노동자도 일류시민이 되고, 최상급의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현대전은 정밀 렌즈가 대량으로 필요한데도 미국에는 숙련된 렌즈공이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미국은 테일러의 과업연구를 적용함으로써 전혀 기술이 없는 노동자들을 훈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었는데, 60일 또는 90일 가량 훈련시킨 뒤 일급 용접공과 조선공으로 바꾸어 놓았다.
200년 전 애덤 스미스는, 한 나라 또는 어떤 지역이 높은 푸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는 최소 50년의 경험, 넉넉하게는 100년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보헤미아와 삭손 지방의 악시생산과 스코틀랜드의 비단 직조를 그 예로 들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1840년경 독일인 보시크 August Borsig 1804~54는 현대 독일에 그대로 남아 있는 독일식 도제 제도를 창안하여 이론은 학교에서 배우고 공장에서는 장인 아래 실제 경험을 쌓게 하였고, 이것이 독일의 산업생산성의 기초이다. 그러나 보시크의 도제수업 기간마저도 3~5년 정도 걸렸다.
미국은 테일러의 방법을 적용하여 수개월만에 일류기술자로 만들었던 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과 독일을 패배시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 준다.
현대역사 초기의 모든 경제강국인 영국, 미국 그리고 독일 등은 새로운 기술의 선도자 역할을 하면서 등장하였다.
작업에 대한 지식의 적용은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제품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작업자의 능력은 수백년 동안 증가하지 않았었다. 기계는 생산능력을 한층 증가시켰다. 그러나 작업자 자신의 생산성은 그리스의 작업장에서 일했던 사람이나 로마제국의 도로를 건설했던 사람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테일러가 지식을 작업에 적용하기 시작하고부터 수년 내에 생산성은 복리로 연 3.5%에서 4%씩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즉 18년마다 생산성이 두 배씩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일러 이후 모든 선진국에서 생산성은 거의 50배나 증가하였다.
지난 100년간의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선진국 경제를 창조한 것은 작업에 대한 지식의 적용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너무도 적다. 기술자들은 기계에, 경제학자들은 자본투자에 그 공을 돌리고 있다.
제조업 농업 광업 운송업 등에 종사하는 육체노동자들의 생산성 증가 그 자체로는 더 이상 부의 창조가 어렵다. 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근로자들의 생산성, 즉 지식을 지식에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
경영혁명
1950, 60년까지는 중산층의 소득을 올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이었다. 16세가 되자마자 노동조합이 있는 대규모 제조공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런 기회는 사실상 가버렸다.
지식을 도구 제조공정 그리고 제품에 적용한 단계에서, 지식을 인간의 작업에 적용한 두번째 단계, 마지막으로 지식을 지식에 적용하는 단계가 시작되었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한국은 7년 전 일본이 파괴되었던 것보다 더 파괴되었다. 그때까지 한국은 내내 후진국이었고, 특히 일제가 36년간 강점하는 동안 일본은 체계적으로 한국기업과 한국의 고등교육을 말살시켰다. 그러나 한국은 유능한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미국식 대학교육을 실시하였고, 경영을 도입하고 적용함으로써 25년만에 아주 발전된 나라가 되었다.
경영자란 지식의 적용과 성과에 책임을 진다.
지식에서 지식으로
과거에는 지식인 of knowledge 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교육받은 사람 educated person이라는 말을 썼다. 교육받은 사라은 두루 넓게 아는 교양인이었다. 그들은 많은 것에 대해 얘기하고 글로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었고,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특수한 하나의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지 못했다.
제2장 조직사회
조직은 조직이 수행하는 과업으로 그 성격이 정해진다. 그 반면 지역사회와 사회는 인간을 한 데 묶어주는 유대, 예컨대 언어 문화 역사 또는 지역성으로 그 성격이 규정된다.
조직은 오직 하나의 과업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 때만 효과적인 것이다. 교향악단은 환자를 돌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병원은 환자를 돌보지만 베토벤을 연주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회, 지역사회, 가족은 “있는", “존재하는" 것이지만, 조직은 “활동”을 하는 것이다.
조직의 기능은 지식을 생산성있게 만드는 것이다. 조직의 구성원이 한 일은 다른 전문가들이 한 일과 합쳐지지 않으면 결과가 되지 못한다. 지식들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한다. 여러 지식이 한꺼번에 결합되어 하나의 지식으로 융합될 때 생산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에게 인문교육을 강화하여 만능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그 치유책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전문가 역할을 할 때만 효과를 낸다.
콩트 Auguste Comte 1798~1857의 저서에 조직에 관한 언급이 없다. 퇴니스 Ferdinand Toennies 1853~1936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에도 조직은 등장하지 않으며, 막스 베버 Max Weber, 1864~1920, 파레토 Vilfredo Pareto 1848~1923의 저서에도 조직은 언급되지 않았다.
조직은 특수목적의 기관이다. 조직은 하나의 과업에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효과를 발휘한다. 조직은 한 곳에만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제2차 대전 후 사회 속의 기독교를 표방한 미국 개신교단은, 사회적 행동이 기독교의 사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성공적이었으므로, 진보적 개신교단은 기독교를 이용하여 사회개혁을 추구하고 사회적 입법을 촉진하였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되었으며 그들은 급속히 결속력과 매력과 신자들을 잃게 되었다.
기업의 내부에는 오직 원가밖에 없다. 이익중심점은 잘못된 표현이다. 기업 내에는 오직 원가 중심점만이 있을 뿐이다.
학교나 대학의 결과는 졸업생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배운 것으로 그들의 인생을 살고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다. 군대의 결과라는 것은 장군으로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방지하거나 이기는 것이다. 교회의 결과는 이 지구상에 있지도 않다.
조직의 개별 구성원은 조직이 결과를 산출하는데 절대로 필요한 공헌을 한다. 그러나 누구도 혼자서는 결과를 낼 수 없다. 그래서 조직은 조직성과의 절대적 전제조건으로서 과업과 사명이 수정처럼 분명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의 조직에 참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결정이다.
조직은 언제나 관리된다. 조직에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조직에는 조직의 사명, 조직의 이념, 조직의 성과 그리고 조직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조직은 조직이 하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개선하여야 한다. 모든 조직은 개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것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조직은 혁신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탈자본주의 사회는 분권화되어야 한다. 조직은 빨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결정은 성과를 중심으로, 시장에 밀착되어, 기술적으로 타당하게, 사회의 변화를 인식하고, 환경과 인구 그리고 지식에 기초하여 내려야 한다.
모든 사회에 있어 중요한 의사소통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한다. 사람들이 서있는 방법, 움직이는 방법, 행동하는 방법 등이다.
지식은 경계를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제3장 노동, 자본 그리고 그들의 미래
노동은 아직도 자산인가?
미국의 제조업 생산은 1970년 GNP의 22%에서 1990년에는 23%로 증가하였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GNP는 두배 반 증가하였다. 그러나 제조업 고용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그 반대로 제조업 고용은 전체 노동력에 대한 비율과 절대적인 숫자면에서 줄어들었다. 지난 30년간 제조업 고용은 1960년 전체 노동력의 25%에서 1990년에는 16%로 거의 반이나 감소하였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전체 노동력은 두배로 증가하였다.
일본에서도 1970~90년 사이 20년 동안 제조업 생산은 두배 반 증가하였지만, 제조업 고용은 전체 숫자로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제조업 일자리들은 매우 귀중한 자산으로 간주된다. 일본에서의 그것들은 점점 더 부채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에서 물건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육체노동 일자리의 감소는 소수민족인 흑인에게는 심각한 위협이다. 일본에서는 사실상 모든 젊은이들이 고학력자이다. 만약 일본이 제조업의 육체노동 일자리 수를 줄일 수 없다면, 일본은 오히려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할 것이다.
일본의 주장은, 제조업체의 육체노동에 적합한 개발도상국의 젊은 노동자들은 매우 많으며, 앞으로 적어도 30년간은 매우 많을 것이므로 생산기지에 대한 걱정은 넌센스라고 본다.
선진국 경제에서는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막대한 교육투자가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제조업 근로자로 채용되더라도 사회와 경제에 조금밖에 공헌하지 못한다.
어떤 종류의 노동이 얼마나 필요한가?
미국의 농부들이 전체 노동인구의 3%밖에 되지 않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의 농업기지를 갖고 있다. 제2차대전 말 경에는 25%나 되었다.
1980년 유에스 스틸은 철강 생산분야에만 12만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10년 뒤 이 회사는 2만 명만 고용하고 있지만, 철강 생산량은 10년 전과 거의 같다. 그러나 소형 제강소는 이 보다 생산성이 3내지 4배나 높다.
소형 제강소는 강철 제조방식을, 노동과 기술을 작업에 적용하는 방식에서, 제조공정, 화학, 야금학, 컴퓨터 운영 등의 지식을 작업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전문기능공들은 지난 날 블루칼라 노동자의 후계자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지난 날 고도 숙련노동자의 후손들이다.
육체노동이 아무리 싸고 지식노동이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육체노동은 지식노동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교육의 질적 수준이 선진국 수준이 아니라 개발도상국 수준인 대규모의 소수민족을 갖고 있는 나라 - 미국이 대표적인 예이다 - 에 엄청난 문제를 야기한다.
영국도 옛날부터 노동자계급이 거주하는 북쪽, 스코틀랜드의 클라이드 지역 그리고 북아일랜드 지역에서의 선진국 문화가 아닌, 개발도상국과 비슷한 노동계급 문화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자본가가 없는 자본주의
연기금이라는 공동자본은 과거 최고의 자본가라고 인정되던 사람들의 모습을 왜소하게 보이게 한다. 미국은 개인기업의 연금기금을 약탈자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연그기금은 정기적으로 주정부와 시정부의 적자예산을 메꾸는데 전용되고 있다. 또 노동조합은 연금기금을 풀어서 자신들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한다.
예전에는 사망에 따른 생명보험이 필요했지만, 현재는 오래 살게 되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1992년말까지 미국의 기고나투자자들은 미국 대기업의 주식의 50%를 갖게 되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금융 지배력의 집중도를 가장 낮게 유지해 왔지만, 지금과 같은 집중도는 전례가 없는 것이다.
연금기금들은 이상하고도 진실로 역설적인 현상이다. 연금기금을 운영하는 관리자들 뿐만 아니라 연금기금의 소유자들도 자본가들은 아니다. 연금기금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없는 자본주의이다.
연금기금의 자금은 자본에 관한 어떤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연그기금의 자금은 이월된 임금이다.
소유는 투자로 변해 버렸다. (벌리와 민즈)
피신탁이론 - 경영자는 이해집단이라고 하는 구성 요소들 사이에서 최대로 균형된 이익을 보장하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1950년대의 사람들은 단언하였다. 그러나 피신탁인의 성과를 평가하거나 측정하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최적균형이익이 어떤 것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무도 평가하려고 하는 시도도 없었다. 반대로 기업의 법적 지배기관인 이사회는 점점 더 무능력해졌고, 점점 더 회사의 최고 경영자를 위한 들러리가 되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광란적인 금융조작 사건, 악의적 기업인수, 차입에 의한 기업인수, 합병 그리고 분할 등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관투자자들이 대기업의 지배 주주로써 등장했기 때문에, 기업사냥꾼들이 더 좋은 가격을 제시하면 주식을 처분해야만 했던 것이다.
기업이 주주의 부의 최대화를 기준으로 경영되는 것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것은 기업이 최단기적 이익을 위해 경영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20년 이내에, 기업감사 business audit라는 것이 수행되어야 한다. 기업감사는 기업의 성과를 추적할 것이고, 전략적 계획 및 구체적인 목표와 비교한 경영의 성과를 추적할 것이다.
제4장 새로운 노동력의 생산성
지식 작업과 서비스 작업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그 생산성은 올라가기보다는 내려갈 것이다. 과거의 30년간 선진국의 자본투자의 3분의 1은 자료와 정보를 처리하는 장치, 즉 컴퓨터, 팩스, 전자우편, 폐쇄회로 TV 등에 투입되었다. 사무직 근로자들의 생산성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고 있다.
가장 생산성이 낮은 분야는 정부에 고용된 사람들의 생산성이다. 미국에는 전체 노동력의 5분의 1이 주정부와 지방정부에 근무하는데 거의 모두 사무직에 종사한다. 영국은 그 비율이 30%이다.
지식근로자와 서비스 근로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그리고 생산성을 빨리 향상시키지 않으면 선진국들은 경기침체를 맞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심각한 사회적 긴장이 야기될 것이다.
서비스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낮은 나라가 그들의 생산성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주려고 한다면 인플레가 모든 사람들의 실질소득을 깎아버릴 것이다. 오래 가지 않아 인플레는 곧 심각한 사회적 긴장을 초래할 것이다.
어떤 작업의 생산성을 높게 하려면 그 작업자체와 그 작업과정에 적합한 팀을 구성하여야만 한다.
첫번째 종류의 팀은 야구와 크리켓팀을 예로 든다. 이것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팀과 같은 종류이다. 이런 팀에서는 모든 구성원은 팀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지 팀처럼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팀은 심각한 정신적 압박을 받지 않는다.
반복적인 과업과 규칙이 잘 짜여져 있는 작업이라는 면에서 야구팀이 가장 좋은 예이다.
두번째 종류의 팀은 축구팀이다. 이런 종류의 팀은 교향악단과도 같고, 새벽 두시에 심장발작을 일으킨 환자 주변에 모인 병원팀의 모델이기도 하다. 이런 팀은 지휘자 또는 코치를 필요로 한다. 이런 팀은 또한 악보를 필요로 한다. 이런 팀들은 해야 할 일이 확실하고 팀이 잘 짜여있다면 야구팀과는 달리 융통성이 많다. 이런 팀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세변째 종류는 복식 테니스팀이다. 중역들의 팀 등이 그 예이다. 구성원 수가 적고, 각자는 고정위치가 아니라 우선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이것이 잘 조정된 팀은 가장 강한 팀이 된다. 이런 팀의 성과는 구선원의 개별성과를 합한 것보다 더 크게 되는 것인데, 이런 팀의 구성원은 엄청난 자기 규제를 필요로 한다.
이런 세가지 팀은 서로 혼합될 수가 없다.
사장실은 최고경영층을 복식 테니스팀 스타일로 만들기 위한 시도인데, 이것은 적어도 정보의 등장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출하하는 작업은 야구팀같은 조직에 의해 수행되었다. 미국의 제약업, 화학산업 등 몇몇 주요한 산업에서는 오래 전부터 축구팀 또는 교향악단 스타일의 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신제품의 디자인과 출하에 야구팀형의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일본은 축구팀과 같은 조직으로 정보를 사용하였고 미국시장에 파고 들었다.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원의 과업은 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간호원의 활동중 4분의 3은 환자를 돌보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간호원들의 시간의 4분의 3 또는 3분의 2는 전형적으로 서류정리에 소모되었다. 백화점 판매원의 활동시간의 반은 판매활동, 즉 고객만족에 쓰여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활동시간의 반은 서류정리에 소모되는데 그것은 고객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컴퓨터를 위해서 봉사한 셈이다.
병원이 문서정리를 전담하는 사무원에게 문서정리를 맡김으로써 간호원들의 생산성은 배가된다. 백화점의 판매원들도 서류정리 업무를 사무전담 직원에게 맡김으로써 그들의 생산성과 만족감은 단번에 향상될 것이다.
지식근로자와 서비스 근로자에게는 늘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이 일은 당신의 주요 과업에 꼭 필요한가요? 이 일은 당신의 성과에 기여합니까? 이 일은 당신의 일에 도움이 됩니까?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을 인간관계론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메이요도 질문이 아니라 해답만 전해주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 일을 더 많이 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건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책임감있는 작업자와 동반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테일러의 지시식 방식 역시 꽤나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지식작업과 서비스 작업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는 책임감있는 사람과의 동반관게를 형성하는 것이 단 하나의 유일한 방법이다.
교향악단에는 100명의 숙련된 연주자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단 하나의 최고 경영자,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 중간관리자가 없다. 이것이 정보를 기초로 하는 조직의 모델이 될 것이다.
외주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하나의 촉진요인은 서비스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향상해야 할 필요가 가장 큰 부문은 조직 내에서 경영계층의 상부로 승진이 될 수 없는 활동부문이다.
병원을 예로 들면 병원의 주된 가치체계는 의사와 간호원들이다. 그들은 환자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집중한다. 의사도 간호원도 수선작업이나 지원작업 그리고 사무처리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비록 병원의 전체 비용의 반이나 지출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병원의 마루를 청소하거나 병실의 침대보를 세탁하는 일을 시작한 대부분 여자들은 15년 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소 용역회사는 이런 영역의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이익을 올린다. 이 회사는 침대보를 다시 설계, 혹은 필요한 도구를 재디자인하는 등의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병원 자체에서는 어떤 투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웃소싱 outsourcing이 필요한 것이다.
아웃소싱이 가장 필요한 부분은 정부이다. 정부의 생산성이 가장 낮다. 대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아웃소싱은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외부하청은 서비스 작업과 서비스 근로자들에게 기회와 소득과 존엄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미래의 조직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앞으로 대기업, 정부기관, 대규모 병원이나 대학과 같은 조직이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 근로자들과 서비스 근로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계급이 아니다. 그러나 서비스 근로자들이 충분한 소득과 존엄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탈자본주의 사회는 계층사회가 될 위험이 있다. 서비스 근로자들은 생산성을 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사회와 사회주의사회에 있어서 조직들은 가능한 한 많은 과업을 그 조직들 속에 포함하려고 하였다. 이에 반해 탈자본주의사회의 조직들은 그들의 핵심적인 과업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제5장 책임에 기초한 조직
조직사회와 지식사회는 책임에 기초한 조직을 요구한다.
잘못한 것에 반대한 잘못의 문제는, 옳은 것에 반대한 옳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조직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조직과 그 구성원들은 자신의 전문적 과업이 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확신해야만 한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믿고, 기업들은 이익을,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증진 외에는 중요한 일이 없다고 확신해야 한다.
전쟁이나 심각한 국가위기에서는 사회 전체의 생존이 그 사회 내의 어떤 조직의 생존보다 우선한다.
조직사회의 조직들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유기체들이다. 조직이 자기들의 전문능력, 전문적 가치, 전문기능을 넘어선 과업을 시도한다면 조직은 조직 자체와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될 뿐이다.
기업의 일차적 책임은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것이다. 이를 내지 못하면 사회의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성과가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아니다.
조직들은 사회적 기관이다. 조직들은 정치적 정통성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의 다원주의사회는 모두 서로 경쟁하는 권력 중심점의 다원주의였다. 오늘날 조직사회의 다원주의는 독립적 조직들의 다원주의로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횡적으로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기업은 환자나 의사들을 놓고 병원과 경쟁하지 않으며, 기업과 병원은 상호 공급자이고 고객이다.
조직으로 보아서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그것은 항상 재앙으로 끝난다.
비영리조직은 실질적으로 가장 큰 사회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역사상 오늘날의 대학이 갖고 있는 것처럼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은 조직은 거의 없었다. 학생에게 입학을 거절하고 학위수여를 거부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일생의 경력과 취업기회를 봉쇄하는 것과 같다.
권한이 조직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조직에게도 권한이 부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조직이 합법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령에서 정보로
1970년경이 되자 정보가 조직을 변모시키기 시작하였다. 정보가 조직의 구조적 유기적 요소로 도입됨으로써 많은 관리계층을 축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통적 조직에서 관리자라 불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는 관리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명령을 하부로 전달하고, 정보는 상부로 올렸다.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전통적 의미의 관리자들은 필요없어진다.
지휘자는 오보에를 연주할 줄 모른다. 그러나 지휘자는 오보에가 어느 시점에 연주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정보에서 책임으로
지식에 기초한 조직은 조직구성원 개개인이 목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직에 공헌하고 그리고 진실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
책임이 없는 권한은 전혀 권한이라 할 수 없으며, 그것은 무책임일 뿐이다.
제2부 정치체제
제6장 주권국민국가에서 거대국가로
지난 400년 동안의 세계 역사는 서유럽의 국민국가의 시대였다. 지난 4세기 동안의 가장 큰 정치적 반격은 모두 국민국가를 초월하려는 시도들이었으며, 국민국가를 번국제적 정치체제로 대체하려는 시도들이었다.
스페인제국과 포르투갈제국은 16세기에 부상하여 19세기 초에 몰락하였고,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제국이 17세기부터 부상하여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이들은 세계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즉각 국민국가를 초월하고 제국 empire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 프랑스의 리셜리외, 나폴레옹, 독일의 2차에 걸친 세계대전, 스탈린 등이 그러한 예이다.
국민국가 그 자체는 범국제화 시도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막대한 금과 은을 채굴하였기 때문에 찰스 5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필립2세의 지휘 아래 스페인은 로마군단 이래 최초의 상비군인 스페인 보병대를 유지하는 재정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스페인에 대항하려는 생각이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정치학자였던 보뎅 Jean Bodin을 자극하였고 그 결과가 1576년 국가론으로 나타났다.
보뎅의 국민국가 개념이 전유럽에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는 스페인의 침략 위협이 너무나 컸고 또한 너무나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배하려는 스페인의 시도는, 국가의 주권에 복종하든가, 외국의 주권에 항복하든가 하는 뿐이었다.
이후로 정치학자들은 국민국가의 정치이론과 기관에만 관심을 쏟았다. 모든 대학의 역사학자들은 국가의 역사만 연구하였다.
제국에 대한 역사를 쓴 사람은 미국에서만 배출되었다. 스페인에 의한 멕시코와 페루의 정복 역사를 쓴 프레스코트 William Prescott 1796~1859
19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들 중 랑케 Leopold von Ranke 1795~1886와 몸센 Theodor Mommsen 1817~1903은 독일의 역사를 넘어섰다. 랑케는 교황의 역사, 몸센은 로마의 역사를 기술하였다. 그러나 근대정치사의 제국의 등장을 무시하였으며, 유럽을 지배하려는 시도를 국가 역사의 한 부분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식민제국들은 진정한 의미의 제국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식민지를 가진 주권국가들이었다. 식민제국의 시대는 로마제국의 시대와 비슷한 4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이래 로마의 가장 위대한 세 명의 황제들인 트라야뉴스, 하드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식민지의 원주민이었다.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는 스페인에서 출생하여 자랐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고 자라났다.
고대 라틴지방의 최후의 위대한 두 저술가중의 하나인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354~430은 현재의 알제리 지방 내륙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며, 베르베르족의 후손이다. 성 제로니모 St. Jerome 340~420는 슬로베니아인이다.
로마제국이 붕괴되고나서도 100년 동안, 과거 로마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은 독실한 크리스찬들마저도 자신들을 로마사람이라 생각했으며, 라틴어로 된 키케로의 저술들을 공부하였다.
미국 독립운동 시절 13개 주에는 자기자신들을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이라고 간주하는 정착민들이 많이 있었다.
영국의 인도출신들이 인도의 독립과 주권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가장 헌신적인 가장 비타협적인 선동가가 되었다.
러시아제국의 통합력 부족 - 우크라이나인, 백러시아인, 아르메니아인, 그루지아인, 독일인들은 수세기 동안 러시아와 공산러시아에서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황제치하의 장군이나 행정관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독일계였다. 스탈린은 그루지아인, 소연방의 마지막 합참의장은 우크라이나인이었다. 그럼에도 소련방의 해체 이후 친제국주의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로마제국은 끝없는 피투성이의 전쟁을 통해서 달성된 반면, 근대의 식민제국들은 최소의 전쟁으로 이룩되었다.
거대국가의 차원
국민국가는 시민사회의 보호자로서 고안된 것이었다. 거대국가에서는 시민은 국가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소유하도록 허가하는 것만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대국가를 향한 최초의 조그만 발걸음은 1880년대 비스마르크에 의한 복지국가의 등장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정부를 사회기관으로 만들어 버렸다.
2차대전 이후 영국의 국립의료제도는 정부를 보험자 혹은 공급자 이상으로 취급한 최초의 기관이었다. 정상적인 의료치료에 있어 영국의 국립보건원은 보험기관이다.
경제지배자로서의 거대국가
미국은 자본주의 경제 아래서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 그리고 새로운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소유를 시도하였다. 1870년대부터 시작하여 금융기관, 철도회사, 전력회사 그리고 전화회사들에 대한 규제법을 제정하였다.
19세기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정부가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공황은 국민정부가 경제적 날씨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낳았다. 케인즈가 처음으로 적어도 중규모 이상의 큰 나라에서는 국민경제가 세계경제와 격리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수의 경제학자들은 프리드만의 추종자들로서 케인즈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공급경제학파와 후기 케인지안들은 아직 케인즈를 추종하고 있다.
조세국가
금세기의 두 차례 세계전쟁이 국민국가를 조세국가로 만들었다. 그것은 화폐경제체제로 전환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슘페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예산은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수입부터 평가하여 지출을 결정해야 하는데, 세계대전 후부터는 모두 그대로 승인되었다.
냉전국가
냉전국가의 기원은 1890년대의 평화시에 해군병력을 크게 증강하기로 한 독일의 결정이었다. 이것은 군비확장 경쟁을 촉발시켰다.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두 개의 주요한 전쟁인 미국의 남북전쟁 1860~65과 보불전쟁 1870~ 71은 불과 수주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군복을 입은 대부분의 민간인들에 의해 치뤄졌다.
근대기술은 이런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거대국가는 작동했는가?
40년 동안 소련은 군사적 초강대국이었지만, 군사시설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서유럽과 미국도 마찬가지다. 효과적인 소득재분배가 성공한 곳은 아무데도 없다. 사실상 지난 40년간 파레토의 법칙을 충분히 확인하였다.
파레토에 의하면 사회의 주요계층들 사이의 소득 재분배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하나는 사회의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의 생산성 수준이다.
한 나라 경제의 생산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소득수준은 더욱 평등해지고, 생산성이 낮으면 낮을수록 소득 불평등도는 더욱 확대된다. 파레토의 법칙은 세금은 소득 불평등을 바꾸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소련의 생산성이 정체되면 될수록 소련의 소득 불평등도는 더욱 커져만 갔다. 미국 또한 좋은 예이다. 1970년대 초까지는 부자는 여전히 부자가 되고, 빈곤층의 소득수준은 훨씬 더 빨리 향상되어 갔으며, 생산성 증가가 하락하자 소득불평등도는 조세정책에 관계없이 꾸준히 증가하였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공공연한 평등주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조세제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의 증가가 멈추자 지난 30년 동안 소득 분배는 계속 불평등스럽게 되어갔다.
현대경제이론에 의한, 국민총소득을 실질적으로 정부가 통제함으로써 경제는 성공적으로 관리된다는 주장은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경기후퇴의 횟수가 줄어들었거나 심각성이 약해졌거나 경기후퇴 기간이 줄어든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현대경제이론을 채택하지 않는 일본, 독일에 있어서 재정흑자 또는 적자의 규모가 경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경기순환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믿는 나라들보다 덜 심각하였다.
조세국가가 초래했던 단 하나의 결과는 정부가 경제적 날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정부로부터 빼앗아버렸다. 조세국가의 도래 이전에 있었던 정부지출에 대한 규제의 소멸로 인하여 나타난 단 하나의 결과는 모든 선진국들 그리고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의 정부는 일상적으로도 큰 지출 초과자가 되었기 때문에 경기후퇴시 그들은 특별히 재정지출을 증가시킬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모든 개별 선진국 정부들은 이미 그들의 조세 부과능력 그리고 차입능력의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
보조금 국가
무엇보다 나쁜 것은 조세국가가 보조금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예산편성을 지출부터 시작한다면 거기에는 조세원칙이 없다. 정부지출은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왔다.
조세국가에 있어서 횡령은 재선을 노리는 정치인들에 의해 행하여졌다.
가장 뻔뻔스럽게 거대한 정부 보조금을 약속함으로써 승리한 선거는 1990년 가을 독일에서 발생하였다. 동독의 새로운 선거구민의 표를 얻기 위해 콜총리는 평화시에 가장 큰 규모의 공공부채를 국민들에게 부담시켰던 것이다.
1918년 슘페터는, 조세국가는 결국 정부의 통치능력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케인즈는 조세국가를 위대한 해방자라고 불렀다.
현대전의 무기들은 민간시설들을 전시 생산체제로 전환하여 생산할 수는 없게 되었다.
냉전국가는 경제적으로 자멸하게 되어버렸다.
소련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군사력을 쌓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군사력이 부과하는 짐은 견딜 수 없이 무거웠기 때문에 그것은 소련경제와 소련사회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군사적 부담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무거워지고 있다. 일본과 독일이 경제적으로 그렇게 번영할 수 있는 주요한 이유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과중한 국방비이다.
경제적 부담인 GNP의 6%는 작은 문제이다. 가장 희소한 자원인 훈련된 기술자와 과학자들을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국방산업에 전환한 것이 문제이다. 미국에서 연구개발에 투입된 모든 자금의 70%는 국방산업의 연구개발에 쓰이고 있다. 일본은 5% 미만이다.
미국의 국방연구가 가장 최고의 그리고 가장 우수한 젊은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을 끌어갔기 때문에 미국경제는 가장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하여 굶주리고 있다. 지난 40년간 가장 유능한 미국의 기술자들이 투입되어 만든 것은 스마트 폭탄이었다. 반면 일본은 팩스 기계를 더욱 완전하게 하거나, 혹은 자동차문짝의 소음을 찾아내는 데 몰두했다.
냉전국가가 경제발전에 끼친 악영향 - 만약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자금과 우수한 인적 자원을 군사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는 그 거대한 군사력 확립에 낭비하지만 않았다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경제적 기적은 동남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이룩했을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국민국가의 옆구리를 찌르고 또한 밑바탕을 침식하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
제7장 범국제주의, 지역주의, 종족주의
19세기 후반의 다국적 조약들, 국제우편연합 IPU, 국제적십자 IRC, 그리고 20세기 초기에는 국제사법재판소가 헤이그에 설립되었다.
1차대전이 끝나고 국민국가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국제연맹이 실패로 끝나고 2차대전 후 국제연합이 설립되었지만, 이도 강대국들이 서로 다투는 장소로서의 구실밖에 하지 못했다. 가장 성공적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도 국제무역에 있어서 범국제주의의 실현을 의도하였으나, 개별국가의 이익추구를 거의 극복하지 못했다.
1970년부터 국민국가들이 분해되는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모든 국가들이 당면한 문제는 점점 더 개별국가 단위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다.
돈은 조국을 모른다.
돈의 통제는 주권의 핵심적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돈은 국민국가의 고삐를 풀고 빠져 나갔다. 돈은 범국제적으로 되어 버렸다. 돈은 이제 더 이상 국민국가들 혼자 또는 그들의 공동노력으로 통제될 수 없다.
정보 또한 조국을 모른다.
정보는 돈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범국제화되었다. 뉴스프로그램은 정보의 작은 부분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범국제화된 돈은 국가의 경제정책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국민국가를 포위한다. 범국제적으로 된 정보는 문화적 정체성으로 구분했던 민족적 동일성을 훼손함으로써 국민국가를 포위하고 있다.
고급문화는 대중문화만큼이나 넓게 범국제적으로 되어갔다.
환경오염은 주권국가의 국경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도전들이 아니다. 환경오염 역시 돈이나 정보와 마찬가지로 국경을 모른다. 스칸디나비아의 삼림은 유럽의 최대 천연자원인데, 영국중부, 스코들랜드, 벨기에 그리고 동독의 공장지대에서 뿜어나온 공해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있다. 캐나다의 삼림을 위협하고 있는 산성비는 미국 중서부의 공장지대에서 발생되는 공해 때문이다.
테러리즘을 추방하기 위해 범국제적 조치와 범국제적 기구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인식해야 한다.
범국제적 군비통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권을 감시하고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 범국제적 기관이 반드시 설립되어야 한다.
새로운 현실 - 지역주의
국제주의는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고, 이미 수평선 위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지역주의는 현실이다. 지역주의는 주요한 분야에 있어 주권정부를 제쳐 놓으며, 그리고 주권 정부를 무력하게 하는 지역적 통치기관을 창조한다.
소지역주의를 향한 움직임도 증가한다. 소연방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족은 터키를 중심으로 투르크 지역공동체를 창설하자고 제안하였고, 발틱 3국은 발틱지역공동체를 제안했다.## 정치적 관점에서 그랜드체스보드 -브레진스키 요약본 참조##
종족주의의 귀환
소연방의 종족 내전, 스코들랜드의 분리요구, 벨기에가 플랑드르족과 왈룬족 의 갈등, 독일내에서의 슬라브족의 움직임, 캐나다의 퀘벡, 온타리오와 마니토바, 중부 평원의 주들, 브리티시 콜롬비아의 분리 가능성 인도의 유지여부, 코르시카와 브리타니는 계속 프랑스령으로 남을 것인지, 핀란드 북부의 렙족 그리고 북부 스웨덴 등의 문제가 있다.
종족주의는 범국제주의의 반대개념이 아니라, 기둥이다. 아일랜드인와 웨일즈인들이 영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은 늘어나지만, 스스로 웨일즈와 아일랜드출신이라는 것을 더 잊지 않는다. 미국에 이민온 라틴계들은 그들이 재빨리 미국 시민이 되지만, 스페인 민족의 정체성을 잊지는 않는다.
제8장 정부기능 회복의 필요성
다음 수십년간은 전례없이 정치적 용기, 정치적 상상력, 정치적 개혁, 정치적 지도력이 요구도리 것이다. 또한 고도로 능력있는 정부가 요구될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몇 가지 분야에 있어 새로운 사고와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주권정부와 범국제적 과업들과의 관계, 주권정부와 지역조직들과의 관계. 다음 수십년간은 주권국가를 초월하는 정치적 기관들의 탄생 그리고 초국가적인 진정한 범국제적 법률의 제정을 보게 될 것이다.
18세기 정치사상가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파당이었다. 특수이해집단이 자기 자신들만의 이익과 문제에 도덕적 당위성을 부여하고 여기에다 다른 모든 것을 종속시키려 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한 훌륭한 해결책은 정당이었다. 정당은 파당을 초월하였다. 즉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지금 정당은 어느 나라에서나 다 낡은 것으로 되었다. 이념들은 통합능력을 상실하였고, 젊은 층에게는 매력이 없다.
반정부 운동이 유행하였지만, 그것은 소용이 없다. 우리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부를 필요로 한다.
환경보호, 사제무기와 국제 테러주의의 근절, 효과적인 군비축소를 수행하려면 큰 정부가 요구된다. 작은 정부를 실천하고, 관료적 병폐를 척결하겠다고 주장한 최초의 대통령은 카터였고, 레이건, 부시가 뒤를 이었다. 대처 총리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모두 실패했다. 이들 기간중 정부지출은 전적으로 통제불능이었고, 지출이 증가할수록 정부의 권한은 더 약화되었고, 더 무능해져 갔다.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정부는 수행능력을 회복하여야 한다.
군사원조의 허구성
##군사원조의 실패에 대해서는 기존의 저자들이 많이 언급하여 생략##
폐기해야 할 경제정책들
공황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이다. 장기간의 경제적 호황 이후에는 사회간접자본, 도로 교량 항만 공공건물 공공용지는 항상 큰 수리를 요한다. 정부가 이러한 투자를 충당하기 위한 재정을 확보하려면 호경기뿐만 아니라 불경기 동안에도 균형예산을 유지하여야 한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최후의 무기로 남겨두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어떤 것을 폐기하는 것은 항상 극심한 저항에 부딪친다. 모든 조직은 가장 우수한 사람을 성과있는 일보다는 문제가 있는 일에 배치하게 되며, 특히 문제가 있는 조직에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폐기대상은 우수한 인력이 고용되어 있는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폐기된지 6개월이 경과된 후에는 모두 놀란다. 왜 그 일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었는가?하고 말이다.
가장 소득이 불평등한 국가들은 소득 재분배정책을 가장 강력히 실시한 국가들이다. 소련, 미국, 영국과 같이 말이다. 소득 재분배정책이 우리들에게 갖다준 것은 교부금 국가였다.
일본과 독일이 경제적 날씨가 아닌 기후에 집중하는 동안은 경제가 잘 돌아갔다. 그런데 독일이 1989년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적자 지출을 감행하자 좌초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달러의 평가절하에 대비한 일본의 1980년대 중반의 소비지출증대 정책은 거의 즉시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폭발적인 투기장세를 촉발시켰고, 이 버블경제는 1991년과 1992년에 걸쳐 폭발해 버렸다.
제9장 사회부문을 통한 시민정신의 회복
자선, 사회봉사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할 것이다. 노인 인구의 증가로 선진국 경제의 진정한 성장부문이 될 것이고, 반대로 자선에 대한 필요성은 궁극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정부는 서비스 근로자들의 최대 고용자이지만, 서비스 근로자들의 생산성은 최하 수준이다. 정부기관은 관료주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기관은 생산성을 규칙과 규제에 복종시킨다. 정부기관은 결과가 아니라 적절한 서류 꾸미기에 관심을 집중한다.
사회부문에 있어 자치적인 지역사회 조직을 양성하는 것은 정부를 소생시키고 정부로 하여금 다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
법률적 용어로서의 시민권은 행동의 표출이 아니라 신분증명이다. 정치적 용어로서의 시민권은 적극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책임을 의미한다.
금세기 이전 가족은 실질적으로 모든 사회적 활동을 제공하였다. 가족이 제공하지 않는 것은 누구도 제공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가족은 더 이상 지역공동체는 아니다.
비영리기관은 미국의 최대 고용자가 되었다. 미국의 성인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적어도 1주일에 3시간씩 무보수 스테프처럼 일을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이제 더 이상 돕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동반자들이 되었다.
미국 가톨릭교회 몇곳에서는 몇 명의 여자들이 마치 교회관리자들처럼 교구 소속의 교회를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신부들은 미사를 집전하고 성체를 나누어준다.
제3부 지식
제10장 지식 : 지식경제학 지식생산성
시장은 정보를 조직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방법들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 시장은 정보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조직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정보자본주의이다. 지난 40년 동안 경제의 중심부로 이동했던 산업들은 제품의 생산과 분배를 위주로 하는 산업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기업들도 구성된 산업이다. 의약품산업의 실질적인 제품은 지식이다. 알약과 연고는 지식을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초거부는 철강왕들이었다. 2차대전 이후의 초거부들은 컴퓨터회사, 소프트웨어회사, 소매업으로 축재한 월마트의 샘월튼, 이토 마사토시, 세인즈버리 형제들이었다.
물건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것으로 큰 이익을 내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재테크를 함으로써 큰 이익을 내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오스트리아 출신 독일의 사회주의자 힐퍼딩 Rudolf Hilferding 1877~1941은 금융자본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최종단계가 금융자본주의라고 했다.
지식에 기초한 경제는 기존의 경제이론이 가정하는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에 의하면 지식을 일찍 적용하고 이용함으로써 얻게 된 최초의 우위들은 영구적이고 뒤집을 수 없게 된다.
경제는 소비와 투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소비의 증가가 지식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증거도 없고, 투자의 증가가 지식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증거도 없다.
지식의 양, 지식의 양적 측면은 지식의 질적 측면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모든 선진국들은 국민총생산의 약 5분의 1을 지식의 생산과 보급을 위해 지출한다. 정상적인 교육비는 약 10분의 1을 차지한다.
전통적인 자본, 즉 화폐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GNP의 5분의 1을 떼놓는 나라는 없다. 자본축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일본과 독일마저도 2차 대전 이후 경제재건과 확장기간 동안에만 그 비율이 겨우 5분의 1을 초과하였다. 따라서 지식의 축적은 이미 모든 선진국에 있어서 가장 큰 투자인 셈이다. 점점 더 지식생산성은 각 나라의 경제적 성공 사회적 성공 그리고 경제적 성과 향상 등에 있어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과학적 기술적 지식을 생산한 것으로만 보면 영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선두주자가 되었어야 했다. 항생물질, 제트 비행기, 바디 스캐너, 컴퓨터 조차 영국의 발명품이지만, 이러한 지식성취를 성공적인 제품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오늘날의 미국도 신기술을 발명해 놓으면 일본이 시장을 먼저 확보한다.
독일은 낡은 지식을 적용하고 그것을 향상시키고 개발하는 데 있어 높은 생산성을 올리지만, 새로운 지식, 첨단기술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화폐자본의 생산성은 2차대전 전에는 경제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전에는 자본의 양을 기준으로 생각하였을 뿐 자본의 생산성을 기준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케인즈마저도 투자된 자금과 저축된 자금으로만 구별하였다.
소련의 계획경제와 프랑스의 유도형계획의 성과측정에서 자본이 투입될수록 산출고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유도형계획을 보류하고 계획경제도 중지시켰다. 소련은 계속해서 계획경제를 유도했다. 소련은 농업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할수록 농산물 수확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헝가리 출신 노벨수상자 기오르기 Albert von Szent Gyorgyi는 생리학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그의 스승은, 기오르기가 헛배가 부르는 것에 연구하겠다고 하자, 매우 흥미있군, 헛배가 불러 죽은 사람은 없내, 만약에 어떤 결과를 얻게 된다면 다른 분야에 적용해서 효과를 내야하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기오르기는 신체의 화학작용에 관한 기본적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결과 효소를 발견하였다.
지식을 생산성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명확하게 집중되어야 한다.
지식을 생산성있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상의 관리도 필요하다.
우리들이 산출량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여러 지식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아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이 알고 있다.
~~~~비결은 연결이다~~~~
제11장 학교의 책임
기술혁명은 이미 교육을 뒤바꾸어 놓고 있다. 컴퓨터를 통한 학습도구화, 시각 및 청각자료의 즉각적인 전송은 교육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1500~1650년 사이 서양은 인쇄된 책을 중심으로 학교제도를 다시 조직하였고 이것이 서양이 세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 중요하고도 유일한 요인이다.
1550년 이전에 중국과 오토만 제국은 정치 군사 경제 과학기술적 문화적으로 세계의 초강대국이었지만, 그 이후로 정체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는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것들만 가르치려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즉 행동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밙복적인 연습 피드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읽기 쓰기 산수 철자법 역사 생물과 같은 과목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은 미래의 학교에서 자신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도구로 이용하여 자기 자신이 스스로 교사가 될 것이다.
학교의 목적은 사회개혁이나 사회개선이 아니다. 학교의 목적은 개인으로서의 배움이어야 한다.
중상위층 학생은 교육을 열심히 받지만, 정작 교육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학생의 장점을 찾아 그것을 목표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교사와 교습법에 대한 가장 올바른 정의이다. 이는 성오거스틴의 교사에 대한 소고에 나오는 정의이다.
학교와 교사들도 이를 알고는 있지만, 그들은 학생의 약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학원 과정까지는 약점을 고치는데 쓰여지고 있다.
경쟁은 학교와 비학교교육기관과의 사이에 나타날 것이다.
제12장 교육받은 사람
지식사회는 사회의 필요에 의해 교육받은 사람의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식사회는 세계적인 관념을 가져야만 하는데, 지식사회는 지식들로 이루어진 사회이고 그것은 돈, 경제학, 직업, 기술, 중심적 이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보 등이 범세계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문교육과 교약교육은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우수한 자들마저도 우둔하고, 저속하고, 돈벌이를 추구하는 현실로 떠나버린 유리알 유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대학의 교양학부,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도쿄 교토 그리고 게이오, 프랑스의 리세, 독일의 김나지움의 유능한 학생들은 교양과목을 매우 즐기고 있다. 그러나 졸업 후에는 모두 잊어버리고 만다.
지식들을 지식의 세계로 통합시키지 못하는 인문교육과 교양교육은 인문도 교육도 아니다. 통합하는 대신에 인문교양과목들은 분해되어 버렸다.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무엇에 관련되어 있는가?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그것의 중심적 관심사항들은 무엇인가? 중심적 이론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중요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는가? 모르고 있는 중요한 분야는 무엇이며, 문제점은 무엇이며, 도전해야 할 분야는 무엇인가? 이러한 이해가 없다면 지식 자체들은 점점 더 쓸모없이 되고 정말로 지식일 수 없게 된다.
그것들은 점차 지적인 오만과 비생산적으로 될 것이다. 모든 전문화된 지식들이 제공하는 중요한 새로운 통찰력은 더욱 더 분리된 다른 전문지식으로부터 나오는데, 그 전문지식마저도 또 다른 지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식들을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식의 소유자들 그리고 전문가들은 자기 자신 스스로의 지식분야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책임을 져야 한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지식의 변화일 것이다. 그 형식과 내용, 의미, 책임, 그리고 교육받은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